네줄 冊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시집

마루안 2022. 6. 5. 19:18

 

 

 

박노해 시인이 신간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냈다. 이전의 시집이 언제 나왔나 봤더니 2010년이다. 그 시집도 12년 만에 냈다던데 다시 12년 후에 새 시집이 나온 것이다.

 

이전 시집처럼 이 시집도 성경처럼 두껍다. 500 페이지가 넘는다. 실제 그의 시집은 성경 읽는 것처럼 곁에 두고 틈틈히 읽어야 한다. 

 

단숨에 읽더라도 질리지는 않는다. 노동시를 많이 썼던 초기 시가 다소 압박감을 줬다면 요즘 시는 힘을 많이 뺐다. 그래서 예전 시에 비해 훨씬 부담 없이 읽힌다.

 

그렇다고 무게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가 치밀한 문학적 구조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에 머리 쥐어 뜯으며 읽을 필요는 없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아! 이런 생각 때문에 시인은 다르구나"를 중얼거리게 된다고 할까. 시인은 시대에 맞서 싸우다 사형 선고를 받고 오랜 기간 감방 생활을 했다.

 

누구는 감방에서 도둑질을 배워 나오지만 시인은 감방에서 철학자가 되어 나왔다. 돌아 가신 신영복 선생 생각도 난다. 이래서 교도소를 학교라고도 하나 보다.

 

실제 학교도 감방도 사람 나름이다. 같은 이슬을 먹고도 뱀은 독을 만들지만 벌은 꿀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이 시집을 읽으면 시가 얼마나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아픈 시를 읽으며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三人行必有我師라는데 이 시인도 나의 스승이다. 그가 나를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서도,,

 

 

그 한 사람 - 박노해

 

가을 나무 사이를 걸으며

먼 길 달려온 바람의 말을 듣는다

 

정말로 불행한 인생은 이것이라고

 

좋고 나쁜 인생길에서 내내

나를 지켜봐 주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게 귀 기울이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나

길을 잘못 들어서 쓰러질 때에도

한결같이 나를 믿어주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고난과 시련을 뚫고 나와

상처 난 몸으로 돌아갈 때에도

아무도 나를 기다리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빛나는 자리에서나

내가 암울한 처지에서나

내가 들뜨거나 비틀거릴 때나

 

나 여기 있다, 너 어디에 있느냐

만년설산 같은 믿음의 눈동자로

지켜봐 주는 그 한 사람

 

내 인생의 그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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