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은 아프다 - 이영춘
발자국 하나 남기려고
저토록 몸부림치는 꽃잎들
꽃잎 속에서 물방울이 튄다
꽃잎 속에서 바람에 분다
물 오른 나무 한 그루 하얗게 일렁이는 그림자 속에
그림자들이 숨어드는 그 꽃잎 숲에
이름표를 단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나무들이 별을 안고 별처럼 어둠을 뚫고 간다
닿을 수 없는 저 허공의 아득한 하늘 끝자락에
구름 기둥 하나 둥둥 떠간다
물방울 기둥 하나 하얀 가루로 부서져 내린다
어제는 심장에 방아쇠를 당긴 헤밍웨이가 깃발을 올리고
오늘은 긴 코트 자락에 자갈돌을 삼킨 울프가 강물 속으로 걸어간다
내일은 반 고흐가 귀 없는 귀로 오베르 밀밭으로 걸어 들어가
잘라낸 귀 한쪽을 찾아 총총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하늘이 열리고 지상은 문을 닫는다
이름 없이 사라질 꽃잎, 꽃잎들
별들이 숨 죽인 밤,
이름표 단 나무들이 빗물로 떠 흐른다
*시집/ 그 뼈가 아파서 울었다/ 실천문학사
서사(敍事)로 가는 문 - 이영춘
슬픔 같은 장대비가 툭툭 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둠 저 끝에서 밀려오는 바람 소리,
등 뒤에서 누가 비수를 꽂듯, 가슴 한 끝에 비수를 꽂고 돌아선 사람
창에 어리던 북극성 한쪽이 허리를 굽혀 내 허물을 판화한다
세상은 황량한 이중성의 간판들, 그 간판들이 점멸등처럼 붉은 눈을 켜고 달려오는데
나는 어느 변곡점에서 성인(聖人)의 도성에 닿을 수 있을까
어제는 바람이 불고 오늘은 비가 오고 빗속에서 붉은 사과가 떨어진다
사과 속에서 씨앗이 떨어지듯 나는 내 발자국 지우며 간다
탓하지 마라 사람아, 바람아, 세상아,
세상 안에서 세상 바깥에서 나는 서사의 문으로 가는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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