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 박두규
밤이면 별을 올려다보는 날이 많아졌다.
세상의 크고 작은 슬픔들이 올라가 자리 잡은 것들
내 오랜 슬픔은 어디쯤에서 빛나고 있을까.
북두칠성은 산 아래 숨어 기척도 없는데
은빛 윤슬 반짝이는 강가로 바람이 일고
나는 홀로 그대를 탐문하며 별빛 사이를 흐른다.
어둠 너머 고요 속 그대를 좇아가노라면
분노의 세상, 탐욕의 세월도 잊고
지독한 내 어리석음의 늪을 벗어날 수 있을까.
깊은 밤 텅 빈 시간 속
별을 바라보는 그대와의 하얀 밤이 있어
허튼 약속 하나 없이 강을 건널 수 있으리.
안개 피어오르는 강가를 걸으며
이승의 세월 켜켜이 쌓인 오래된 부고(訃告)를
모두 강물에 띄워 보냈다.
더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는 듯
강물은 두텁나무숲을 휘돌아 흐르고
*시집/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의 시간 속에서/ 도서출판 b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躁鬱)의 시간 속에서 - 박두규
무리 지어 피어나는 작은 꽃들
내밀한 속살에서 배어나는 은은한 향내
피고 지는 하얀 꽃들의 시간 너머로
끈질기게 소환되는 기억들
그 어디쯤에서 되살아나는
내 오랜 갈애(渴愛)의 숨소리
그 기억의 골목길을 비틀거리는
젊은 날의 빛나던 어둠과
어둠 속 두려움
이것들은 지금껏
어디를 살다 다시 왔을까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躁鬱)의 시간 속으로
이제 와 다시금
나를 불러 세운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왜
불현듯 불온한 거리에 내몰려
향기에 취한 탐진 세상을 기웃거리는가
더듬거리며 보이지 않는 그대를 찾아온 세월은
그 사랑은 정녕 어디에 있는가
# 박두규 시인은 1985년 <南民詩>, 1992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과꽃 편지>, <당몰 샘>, <숲에 들다>, <두텁나무숲 그대>,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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