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시집 전문 출판사가 나온 모양이다. 너댓 군데 메이저 출판사가 장악하고 있는 시집계에서 이런 출판사의 출현은 반길 만하다. 호시탐탐 낚을 준비를 하고 있는 내 시 그물망에 이 출판사가 들어왔다.
<시인의일요일>이라는 이색적인 출판사다. 먼저 세 권이 나왔다. 셋 중 하나를 고른다. <나의 머랭 선생님>, 몇 편 읽다가 바로 방생을 한 나머지 시집도 좋은 시집일 것이나 내 잣대로는 냉정하게 하나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내 일상이 참 매말랐다. 별로 공감이 안 가는 시까지 인내심 발휘하며 눈에 넣을 만큼 여유롭지 않다. 편식을 하는 내 얕은 지식에 반성도 한다. 나는 게으른 독자이지 착한 독자가 아니다.
김륭은 지금까지 나온 시집들 제목이 전부 이색적이다. 더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읽은 그의 시집들이다.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 원숭이의 원숭이>,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그리고 이번에 나온 <나의 머랭 선생님>까지 다소 초현실적(?)인 제목들이다.
그래서였는지 김륭의 시를 끈질기게 읽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번 시집을 읽고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제야 이 시인이 참 시를 잘 쓴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기 색깔이 분명한 시인이다.
*언제나 막다른 곳이다. 인생이란 입으로 뱉기 전에
뒤를 들키는 말이어서 웃는다. 빌어먹을, 다음 생이 있다면
이번 생은 살지도 않았을 것!
*시/ 막창집/ 일부
*혼자 산 지 오래되었다. 이 문장으로
끝이었으면 좋았을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저녁
*시/ 떠나지 못했어요, 란 말 데리고 밥 먹으로 가요/ 일부
*요즘은 마흔다섯 즈음의 나에게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야 쉰을 넘긴 난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손을
바르르 떨 것 같거든
*시/ 병원/ 일부
눈에 들어오는 싯구가 있으면 그 시를 여러 번 읽는다. 읽어도 질리지 않고 단물이 계속 나온다. 네 번째 시집에서 이 시인을 온전히 가슴 속에 담는다. 그의 시에는 단맛이 금방 느껴지지 않아도 읽을수록 중독되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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