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손의 이력서 - 김명기

마루안 2022. 3. 11. 21:37

 

 

손의 이력서 - 김명기

 

 

손은 밥을 버는 힘이다

인디언들은 손의 힘을 돋우기 위해

사냥 나서기 전날 밤 밤새 손바닥을 두드리거나

손으로 북을 쳤다 막노동 새벽밥

사십 년이나 먹었다는 목수 오야지 황 씨

벌겋게 달아오른 드럼통에 언 손을 녹이고

허리춤에 장도리를 빼내어 굵은 손가락 마디를 두드린다

 

"요로코롬 두딜기 주야 곱은 것이 바로 펴지제 하도 두딜기서 손도 지 손인지 모를 것이여 손바닥을 두딜기면 굳은살 땜시 튕겨 나온당게"

 

살리겠다고 내민 손을

해치는 줄 알고 물어 버린 개

버림받은 상처가 고스란히 손등에 옮았다

상처를 붕대로 감싸고 보니

잡힌 저나 잡아 온 나도 한동안 밥걱정은 덜겠구나 싶은 날

인디언처럼 늙은 목수처럼

상처 입은 내 손이 모처럼 선해 보인다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걷는사람

 

 

 

 

 

 

파문 - 김명기

 

 

인력 사무실 거쳐

날품 팔러 온 늙은 사내

일 시작하기도 전에

쏟아지는 비에 쫓겨

빈 컨테이너로 몸을 피한다

 

헤아릴 수 없이 부서지는

굵은 빗방울만큼

급한 숨 몰아쉬면 잔기침 뱉는

노구의 오랜 내력을 알 수 없다

 

비 오는 새벽

사는 일에 떠밀려 나와

비에 쫓겨나는 아침

열린 문밖 캄캄한 하늘이

물빛 젖은 얼굴 위로 스며들 때

 

한없이 넓은 세상도

때로는 막다른 길이라서

새삼 유난 떨 일도 아니라며

더는 머물지 못하고

돌아서는 노구여

이 우중에 또 어디로 가시려나

 

 

 

 

*시인의 말

 

시를 쓰고 시집을 묶는 동안 밥벌이가 바뀌었다.

중장비 기사에서 유기동물 구조사로.

 

얼마나 많은 밥벌이를 거쳐 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위로해 주는 시가 있어 여기까지 왔다.

 

밥과 시 사이,

무슨 짓인지도 모를 일을 자꾸만 꾸미고 있다.

언젠가 나를 이해할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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