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이력서 - 김명기
손은 밥을 버는 힘이다
인디언들은 손의 힘을 돋우기 위해
사냥 나서기 전날 밤 밤새 손바닥을 두드리거나
손으로 북을 쳤다 막노동 새벽밥
사십 년이나 먹었다는 목수 오야지 황 씨
벌겋게 달아오른 드럼통에 언 손을 녹이고
허리춤에 장도리를 빼내어 굵은 손가락 마디를 두드린다
"요로코롬 두딜기 주야 곱은 것이 바로 펴지제 하도 두딜기서 손도 지 손인지 모를 것이여 손바닥을 두딜기면 굳은살 땜시 튕겨 나온당게"
살리겠다고 내민 손을
해치는 줄 알고 물어 버린 개
버림받은 상처가 고스란히 손등에 옮았다
상처를 붕대로 감싸고 보니
잡힌 저나 잡아 온 나도 한동안 밥걱정은 덜겠구나 싶은 날
인디언처럼 늙은 목수처럼
상처 입은 내 손이 모처럼 선해 보인다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걷는사람
파문 - 김명기
인력 사무실 거쳐
날품 팔러 온 늙은 사내
일 시작하기도 전에
쏟아지는 비에 쫓겨
빈 컨테이너로 몸을 피한다
헤아릴 수 없이 부서지는
굵은 빗방울만큼
급한 숨 몰아쉬면 잔기침 뱉는
노구의 오랜 내력을 알 수 없다
비 오는 새벽
사는 일에 떠밀려 나와
비에 쫓겨나는 아침
열린 문밖 캄캄한 하늘이
물빛 젖은 얼굴 위로 스며들 때
한없이 넓은 세상도
때로는 막다른 길이라서
새삼 유난 떨 일도 아니라며
더는 머물지 못하고
돌아서는 노구여
이 우중에 또 어디로 가시려나
*시인의 말
시를 쓰고 시집을 묶는 동안 밥벌이가 바뀌었다.
중장비 기사에서 유기동물 구조사로.
얼마나 많은 밥벌이를 거쳐 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위로해 주는 시가 있어 여기까지 왔다.
밥과 시 사이,
무슨 짓인지도 모를 일을 자꾸만 꾸미고 있다.
언젠가 나를 이해할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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