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별, 아버지의 침상 - 최규환

마루안 2021. 12. 2. 21:39

 

 

별, 아버지의 침상 - 최규환

 

 

별은 멀고 아득했다

가장 가까운 별이

4광년의 시간을 통과하여 눈에 닿았을 때

나는 그보다 먼 직선의 별을 상상했으나

이미 소멸된 화석이었으니

 

그리 오래된 일기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별이 통과하는 직선과 공간의 새벽에서 흐느적거렸다

고열이 시작되는 온도에 맞춰

빛은 방 안 가득 선명했고

숨을 오랫동안 지켜내고 있었다

 

별은 직선과 허공에서

수천억 광년을 거슬러 씨앗을 빚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얼룩이 찌든 침상에 누워 천명(天命)을 이룬 돌이 되어갔다

고름을 힘껏 쏟아내고 난 후

시간 밖에서 빛을 다듬었던 것이다

닿을 수 없는 행성 밖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천천히,

그리고 또렷한 화석이 되어

별의 화상(畵像)을 빚어내고 있었다

 

옥수수 껍질 벗기듯 아버지를 돌아 눕힌 후

궤양이 스며든 척추에 짓무른 바람이 펄럭였다

 

볕 좋은 아침

아버지를 널어 말린 후 가슴에 난 털 몇 개를 뽑아주었다

세상이 태어나기도 전에

오래전 자신을 분류해둔 무수한 공간 밖에서

작은 눈빛 하나 남아 있었다

 

 

*시집/ 설명할 수 없는 문장들/ 문학의전당

 

 

 

 

 

 

조문(弔問) - 최규환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기물 앞에 생을 불어주던 날

목숨도 내 것이 아닐 때가 많았다

 

네 시간의 처방을 마친 직원은 늦은 밤이 돼서야 밧줄을 풀어주었다

기억을 쌓아두었던 아둔함이 오히려 우환을 키웠던 것일까

생을 이끌어준 목록과 내연이 쏟아져 나왔으나

손톱만 한 그리움조차 읽어내지 못했다

나도 너처럼 백주대낮 취기로 활보하던 거리가 있었고

빛나고 어여쁜 사랑도 꽃피웠을 청춘이 있었는데

 

그 말이 혼령처럼 맴돌아 먹먹한 울음으로 밤이 흐르고 있었다

목숨과도 같은 것일수록

집착을 버려야 그만큼 비워지는 것인데

소중한 것이 차지한 마음의 용량이 너무 많았다

 

어렸던 딸과 아들을 지우고

푸릇한 바다의 풍경도 사라지고

운명 같았던 사랑도 힘겹게 떠나보내고

지금은 멀어진 가족과 함께 보낸 화기애애도 묻어야 했다

 

낡고 깨진 것과 함께

새로 산 단말기를 들고 돌아오는 길

가만가만 내 속을 들여다보는,

내가 나를 두고 떠나는 변두리의 밤이었다

 

칠 년의 세월을 눈앞에서 가져간 그해 여름

자주 마음이 오갔던 공원에 이르자

상수리나무가 우기와 함께 조문(弔問)에 들어서고 있었다

 

 

 

 

# 최규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1993년 <시세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불타는 광대의 사랑>, <설명할 수 없는 문장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