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밀려난 것들 - 김주태

마루안 2021. 12. 1. 22:10

 

 

밀려난 것들 - 김주태

 

 

특별시에서 인구 십만 도회지로 밀려나

술잔을 채운다

족발 뼈다귀 뜯으며

빈 소주병 일으켜 세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노점상 아줌마는

자릿세 걱정이고

이 도시에서 조금만 고생하면

시의원 명함 하나 내밀 수 없겠냐고

안경 너머 불안한 눈빛

시베리아 어느 산등성이 얼음 같은

술잔을 부딪친다

찬바람 불고 눈보라 이는

겨울이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절룩이며 떠났던 땅 외발로 돌아온

네게 쏟아 붓고 싶은 말들

오물거리는 목구멍으로

따뜻한 어묵 국물 삼킨다

늦은 밤 구겨진 지폐

밤거리에 지불하고 돌아오는 길

무너진 담장 아래 고개 숙인 수국

기울어져가는 담벼락

구부러진 허리에 희미한 달빛이 붙어 있다

 

 

*시집/ 사라지는 시간들/ 삶창

 

 

 

 

 

 

간간이 벌어 근근이 살아간다 - 김주태


한파가 오면 긴 겨울잠에 든다
간간이 벌어 근근이 또 며칠 버티기 위해
두더지같이 차가운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등에 얼음꽃이 파스처럼 피어오르면
몸을 더욱 웅크리고 죽은 듯 꼼짝 않는다
아픈 곳을 찾아 어루만지는 손길이
깊은 상처에 오래 머문다
문밖에는 바람이 차갑게 흩어지고
내일 일거리를 기다리는
밤 아홉 시와 열 시 사이
기별이 오기를 입술이 마르고 목이 타게 기다리다
불러주는 꿈을 꾸며 잠이 든다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절망의 새벽
어금니 꽉 깨물고 벽을 짚고 일어서면
나를 파고 나를 메꾸는 일들
까마득히 떨어져
한 발 빼면 또 한 발 빠지는
참 징한 펄 한가운데서
이 악물고 버틴다
간간이 벌어 근근이 살아가기 위해

 

 

 

 

 

*시인의 말

 

시 한 편 쓸 때마다

고해성사 하는 기분이었다.

누구에게 털어놓은 것일까?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혼자 중얼거리다 보면

가슴속에 고름처럼 울음이 고였다.

이렇게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