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할 일들이 너무 많다 - 김익진
슬퍼할 일들이 너무 많다
이미 지나간 날들이
얇은 지갑에 묶여 있던 또 하루를
잎이 다 떨어진 산허리 위로
끌고 지나간다
초겨울 추위에 얼어있는 낙엽은
기어처럼 흔들리고
달리는 자동차 울음이
목젖까지 꽉 찬 오후다
삶은 알 수 없는 미래
흑백이거나 흐린 음영으로
별 무리와 함께 가는 길인데
끼워야 할 단추가 너무나 많다
조수와 달이 배합한 삶
회전하는 마법의 순간들은
되돌아갈 길이 없으니
타인에게 말이나 걸어본다
우리는 단 한 번 사는데
이 삶은 북적대는 비둘기장이다
일요일 오후에는
슬퍼할 일들이 너무 많다
*시집/ 사람의 만남으로 하늘엔 구멍이 나고/ 천년의시작
불면증 - 김익진
태양이 고정되어 있다면
낮과 밤이 있을까
달이 지구보다 크다면
지구가 달 주위를 돌까
지구가 돌지 않으면
세상이 어지럽지 않을까
태양이 순간 수백 킬로로
날아가 데 왜 멀미가 없을까
태양이 구심력을 놓아버릴까
달을 신뢰할 수 있을까
태양과 달 사이만 하늘일까
우리는 어디로 날아가는 중일까
어디에 잡혀 또 천 년을 살까
이 많은 별들은 누가 잡고 있을까
중력이란 마녀는 누구일까
태양을 저울에 올려놓고
눈금을 확인한다
어제와 똑같다
# 김익진 시인은 경기도 가평 출생으로 독일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2007년 <월간 조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회전하는 직선>, <중력의 상실>, <기하학적 고독> 등이 있다. 현재 한서대 항공신소재공학과 교수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간의 바깥 - 이문희 (0) | 2021.11.29 |
---|---|
일기 - 김진규 (0) | 2021.11.29 |
그 후 - 박민혁 (0) | 2021.11.27 |
길 위의 방 - 홍성식 (0) | 2021.11.26 |
폐막식을 위하여 - 서윤후 (0) | 2021.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