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슬퍼할 일들이 너무 많다 - 김익진

마루안 2021. 11. 27. 21:51

 

 

슬퍼할 일들이 너무 많다 - 김익진

 

 

슬퍼할 일들이 너무 많다

 

이미 지나간 날들이

얇은 지갑에 묶여 있던 또 하루를

잎이 다 떨어진 산허리 위로

끌고 지나간다

 

초겨울 추위에 얼어있는 낙엽은

기어처럼 흔들리고

달리는 자동차 울음이

목젖까지 꽉 찬 오후다

 

삶은 알 수 없는 미래

흑백이거나 흐린 음영으로

별 무리와 함께 가는 길인데

끼워야 할 단추가 너무나 많다

 

조수와 달이 배합한 삶

회전하는 마법의 순간들은

되돌아갈 길이 없으니

타인에게 말이나 걸어본다

 

우리는 단 한 번 사는데

이 삶은 북적대는 비둘기장이다

일요일 오후에는

슬퍼할 일들이 너무 많다

 

 

*시집/ 사람의 만남으로 하늘엔 구멍이 나고/ 천년의시작

 

 

 

 

 

 

불면증 - 김익진

 

 

태양이 고정되어 있다면

낮과 밤이 있을까

달이 지구보다 크다면

지구가 달 주위를 돌까

지구가 돌지 않으면

세상이 어지럽지 않을까

태양이 순간 수백 킬로로

날아가 데 왜 멀미가 없을까

태양이 구심력을 놓아버릴까

달을 신뢰할 수 있을까

태양과 달 사이만 하늘일까

우리는 어디로 날아가는 중일까

어디에 잡혀 또 천 년을 살까

이 많은 별들은 누가 잡고 있을까

중력이란 마녀는 누구일까

 

태양을 저울에 올려놓고

눈금을 확인한다

 

어제와 똑같다

 

 

 

 

# 김익진 시인은 경기도 가평 출생으로 독일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2007년 <월간 조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회전하는 직선>, <중력의 상실>, <기하학적 고독> 등이 있다. 현재 한서대 항공신소재공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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