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증강현실 - 이문재

마루안 2021. 11. 25. 21:46

 

 

증강현실 - 이문재

 

 

뛰지 말라

전파를 더 많이 맞는다

 

가만히 서 있지 말라

몸에 부딪쳐 부서지는 전파가

무릎까지 쌓인다

 

걸어다니지 말라

옷이 전파에 절어 너덜너덜해진다

살갗이 전파에 맞아 시퍼렇게 멍든다

 

숨 쉬지 말라

전파가 허파꽈리에 가득 차 딱딱해진다

눈 뜨지 말라 망막 안쪽이 긁힌다

 

전파 전파 전파가 쏟아진다

위아래 앞뒤 왼쪽 오른쪽 전방위에서

초강력 전파가 쉬지 않고 달려든다

 

폭풍처럼 폭우처럼 폭설처럼

쓰나미처럼 화산처럼 지진처럼 눈사태처럼

정전처럼 감전처럼 단전처럼 누전처럼

신종플루처럼 광우병처럼 조류독감처럼 구제역처럼

전파가 지구를 뒤덮고 있다

 

옷을 털지 말라

전파 부스러기 떨어진다

물로 씻지도 말라

전파가 몸을 관통하고 있다

실제 상황이다

 

 

*시집/ 혼자의 넓이/ 창비

 

 

 

 

 

 

사랑과 평화 - 이문재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사람이 만든 노래보다

노래가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사람이 만든 길보다

길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사랑으로 가는 길은 오직 사랑뿐

사랑만이 사랑으로 갈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만든 사랑보다

사랑이 만든 사람이 더 많아진다

 

평화로 가는 길 또한 오직 평화뿐

평화만이 평화로 갈 수 있다

평화만이 평화를 만들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만든 평화보다

평화가 만든 사람이 더 많아진다

 

이 또한 오래된 일이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라는 문장은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채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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