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나비가면 - 박지웅 시집

마루안 2021. 10. 12. 21:42

 

 

 

요즘 박지웅의 네 번째 시집인 <나비가면>을 부지런히 읽고 있다. 몰입이 잘 안 되는 몇 편을 빼고는 여전히 그의 시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게 한다. 아마도 2007년 첫 시집 이후 4년이나 5년 터울인 올림픽 주기로 시집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올림픽이든 월드컵 축구든 4년이 기다림과 즐기는 감동이 가장 적당하다. 시집 내는 것도 이 터울인 4년 주기가 가장 무난하다. 그래서일까. 박지웅의 네 번째 시집도 알맞게 숙성된 시들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동안 내가 읽은 그의 시집을 나열해 본다. <너의 반은 꽃이다>,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나비가면>이다. 철학적이고 염세적이고 몽환적이고 우화적이고,, 또 뭐 있나? 어쨌든 지금까지 그의 시를 읽어 본 바로 검은 우울과 나비로 집약할 수 있겠다. 

 

시중에 제목만 그럴 듯하면서 공감이 안 가는 해독 불능의 암호로 가득한 시집이 있다. 반면 박지웅은 눈에 확 들어오는 시집 제목에 부합하는 단단하게 여문 시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망가고 싶은데 갇혀 있어야만 했던 상처를 시적 비상구로 무사히 탈출한 삶의 이력이 묻어 있는 시편들이다.

 

 

*마당 밖에 맨발로 내쫓긴 날
나는 풀어진 보자기 같은 발로 꽃나무까지 걸어갔다
발등에 하염없이 꽃그늘을 얹도록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길을 두고 머뭇거리는 일이 잦았다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밀어내느라 그랬을 테지만
발아래 애먼 흙바닥만 문지르던 날

나도 누군가의 길을 허물었을 것이다
저 꽃분 속에도 꽃이 연 길이 있을 것이다

*시/ 누군가의 남해/ 일부

 

 

*백년과 나비 어디쯤에 당신이 살았다는 말을 들었지요

(.....)

망설이는 것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입술에서 멈춘 입술이 내려앉지 않고 다시 새가 되려나 봐요

백년과 나비의 어디쯤에서 한 번은 만나요

 

*시/ 백년과 나비 어디쯤에 당신이/ 부문

 

 

그의 시에는 복합적 은유로 나비(蝶,猫)가 자주 나온다. 시집 제목도 나비가 들어갔는데 이번 시집엔 아예 나비가면을 들고 왔다. 하긴 첫 시집부터 나비매듭을 하고 왔다. 남발하는 것은 아니고 적당히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그이 시집을 들추며 몇 편의 나비 시편들을 읽어 본다.

 

 

*나비는 꽃이 쓴 글씨
꽃이 꽃에게 보내는 쪽지

*시/ 나비를 읽는 법/ 일부


*비로소 아 비로소 한 줌의 청동도 남아 있지 않은 곳에서 한 올 한 올 핏줄이 새로 몸을 짜는 것이다 그 푸른 청동의 무덤 위에 나비 하나 유연하게 내려앉는 것이다

*시/ 나비와 망치/ 끝 부문


*버려진 지구 위로 거짓말처럼
나비, 난다 플라스틱 바다 가볍게 날아
적도 스치나 싶더니 순식간에 담벼락 넘어와
거울에 박힌다, 나비도 무겁다 

*시/ 나비는 무겁다/ 일부

 

 

시인은 시종일관 화려하고 뽀시시한 것들로 치장한 주류보다 어둡고 침침하고 구질구질한 비주류에 눈길을 준다. 나는 이 점에 공감이 간다. 그 중에서도 첫 시집에 실린 나비매듭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얼어 죽어있는 길고양이의 사체를 비닐에 담아 처리하는 묘사가 촘촘하고 얼얼하다.

 


*쓰레기나 뒤지더니 쓰레기처럼 죽어가는
놈의 따뜻한 기억은 대부분 길에서 주운 것이다
길에서 피었다 사라지는 것들
꽃도 머지않아 이 길에 뼈를 묻을 것이다

검은 비닐에 넣고 나비매듭을 한다
고양이와 꽃과 나는, 쓰레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시/ 나비매듭/ 끝 부문

 

 

시인이 늦깎이로 다녔던 대학이 자리한 북아현동을 잘 안다. 나는 한동안 아현동 비탈집에 살았고 츄리닝에 쓰레빠 신고 길 하나만 건너면 북아현동이었다. 그곳은 실패가 두려운 사람들이 숨어 살기에 좋은 동네였다. 박지웅의 나비는 춥고 어두운 날에 더 활발하다. 그 나비는 이번 시집에도 여전히 날고 있다.

 

나비가면 - 박지웅

 

나비는 평생

흰 눈을 볼 수 없었다

 

나비가 지고

 

첫눈에 빠지는

사람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