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 권내현

마루안 2021. 10. 8. 22:31

 

 

 

강명관 선생의 가짜 남편 만들기를 읽고 이 책까지 읽게 되었다. 같은 사건을 저자의 시각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 흥미로웠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주제의 책이 같은 해에 출간되었다. 이 책이 강명관 선생보다 2개월 먼저 나왔지만 내가 안 건 강명관 선생 책이 먼저였다.

 

그런 점에서 사람도 책도 인연이 있어야 만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없음에야 가능한 좋은 책을 읽고 싶다. 나이 먹을수록 미사여구의 달달한 문학 책보다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이런 책에 더 눈길이 간다.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제목이다. 제목에 지나친 욕심이 들어가면 되레 의미가 퇴색된다고 본다. 어쨌건 이 사건이 워낙 흥미로워서 이 책도 단숨에 읽어낼 수 있었다.

 

유유 사건 해석은 이항복의 소설 <유연전>과 권득기가 지은 <이생송원록>을 바탕으로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인데 권내현 선생은 여기에 살을 보태 조선시대 노비 문서나 상속 문서 등을 더해 유유 사건을 상속 문제 쪽으로 해석하고 있다.

 

화폐가 없던 시절 상속은 전답이나 집, 그리고 노비 등이었다. 내 아버지는 유산은커녕 빚만 잔뜩 남겨 어머니와 큰형이 빚더미에서 벗어나느라 평생 고생을 했다. 지금이였으면 상속포기라도 했을 텐데 몰랐던 어머니와 미성년 큰형은 빚쟁이에 시달리며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상속도 재산이 있는 집이나 해당된다. 대구의 사족이었던 유유 가문은 그런 대로 잘 사는 집안이었다. 어느 집에나 말 못할 사연은 한두 개씩 숨기고 사는 법, 이 집안에도 드러낼 수 없는 사연 때문에 장남이 집을 나가면서 일이 벌어진다.

 

나중 가짜 아들 행세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아들이 맞다 아니다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가짜 아들이 도망을 쳐 사라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번진다. 사라진 사람이 진짜 남편이 맞는데 장남 지위를 뺏길 것 같아 동생 유연이 형을 죽였다는 고발 사건이다.

 

동생은 펄쩍 뛰며 부인하지만 형을 죽인 죄목으로 서울로 압송된다.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동생 유연은 형을 죽였다고 자백한다. 며칠 후 유연은 살인죄로 처형을 당한다. 처형을 당하기 전 유연은 눈물로 호소를 한다.

 

내가 억울하게 죽고 나면 목숨은 되돌릴 수 없으니 도망간 사람을 찾아 그가 형이 맞는지를 밝힌 후에 나를 죽여도 늦지 않을 것이오. 유연을 심문하던 재판장 심통원은 대노하며 유연의 입술을 사금파리로 짖이겨버린다.

 

창졸 간에 처형을 당한 유연의 아내 이씨는 피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15년 후, 진짜 유유가 돌아온다. 사건의 전모야 어떻든 형이 가출을 하면서 동생이 억울하게 죽은 것은 확실해졌다. 그럼에도 당시 이 사건을 심문하고 처형했던 어떤 관료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권내현 선생은 이 사건의 전후를 꼼꼼히 설명하고 있는데 유유의 집안 내력과 어떻게 이 사건에 대처를 했는지 책을 읽으면서 정리할 수 있었다. 조선 초기에는 딸을 포함해 모든 자식들에게 균분 상속이 일반적이었다. 점점 장자에게 더 많은 상속으로 변했다.

 

그 변화 시기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 지금도 일어나는 경제 사건에서 최종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갔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유유 사건에서도 상속에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다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이 워낙 여러 사람과 얽혀 있고 여섯 명이 목숨을 잃은지라 딱 하나로 결론지을 수는 없어도 저자의 꼼꼼한 자료 수집과 예시로 충분히 설득이 된다. 어떻게 한 사람의 일생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