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 분야에 독보적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에게 황제라는 호칭을 붙인다. 축구 황제 펠레,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등이다. 내 어릴 적 마이클 잭슨은 정말 황제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나는 별로 좋은 줄 모르겠는데 이미 친구들 사이에서 마이클 잭슨은 우상이었다. 워크맨이라는 휴대용 카세트에 테입이 늘어지도록 잭슨의 노래를 듣는 친구도 있었다. 천성이 빠른 곡을 좋아하지 않은 나도 당시의 잭슨 광풍을 피할 수 없었다.
마이클 잭슨이 죽은 후였을 것이다. 어쩌다 잭슨에 관한 얘기가 나왔는데 젊은 직원이 그랬다. "마이클 잭슨이 흑인이었어요?" 내 조카 뻘 청년처럼 마이클 잭슨이 흑인인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흑인, 백인 구별하자는 것이 아니다. 잭슨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가 벗어나고자 했던 정체성이다.
1958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2009년에 죽었다. 비교적 짧은 51년의 삶을 살았다. 프로포폴 과다 사용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일종의 약물 중독 사망이다. 2009년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2003년 장국영이 호텔에서 투신 자살한 이후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팝의 황제답게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기록들이 많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연예인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고 20세기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982년 발표한 Thriller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사망한 2009년 이후의 수익도 천문학적 수치다. 수 년째 죽은 사람 중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인물 1위다.
나는 왜 뜬금없이 한참 전에 죽은 마이클 잭슨을 언급하는가. 그는 생전에 환호와 비난을 함께 받으며 살았다. 나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든 시비할 생각은 없다. 단지 왜 그가 흑인의 정체성을 그토록 버리고 싶었는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오래전 내가 농약병을 들고 방에 들어가 방문을 잠그는 바람에 어머니를 실신하게 한 적이 있다. 내가 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도 그걸 털어 놓을 수도 없는 고통 때문이었다. 오늘은 이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니 나중으로 미룬다.
마이클 잭슨은 가수로 성공한 이후 수없이 성형 수술을 한다. 흑인에서 라틴계로 라틴계에서 백인으로 바뀌는 얼굴 변화가 눈물겹다. 죽기 전의 잭슨을 보면 흑인 흔적을 완전히 지웠다. 젊은 친구가 "마이클 잭슨이 흑인이었어요?"라고 물을 만하다.
내가 이반이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고 싶었던 것처럼 잭슨도 흑인을 벗고 싶었을까. 내가 피를 전부 뽑아 내버려도 게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잭슨의 몸 안에는 흑인의 DNA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사진 아래 설명을 붙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잭슨 형제들이다. 어쩌면 헤어 스타일도 외모도 이렇게 닮았을까. 뭉툭한 코는 완전 붕어빵이다. 가운데는 아버지, 오른쪽 모자 쓴 아이가 마이클 잭슨이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잭슨은 형들과 그룹을 결성해 가수로 활동한다.
스무 살 직전 무렵의 이때까지도 전형적인 흑인의 모습이다.
1982년 스릴러로 대박을 친 후 트럼프와 찍은 사진이다. 이때는 코를 많이 세운 탓인지 라틴계처럼 보인다. 잘 나가는 사업가였던 트럼프는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 잭슨은 친분도 백인과만 쌓고 흑인과 어울리거나 사진 찍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서른 살 이후부터 잭슨은 본격적으로 백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외모만으로 이제 그는 흑인이 아니다. 잭슨은 성공한 흑인의 표본으로 삼기 위해 각종 흑인 단체에서 주겠다는 훈장이나 명예상을 거절한다. 성추문 이후에는 그런 제안마저 끊긴다.
너무 잦은 성형으로 점점 망가진 얼굴이다. 이후 아동 성추문 사건까지 터져 마이클 잭슨은 황색 언론의 돈벌이가 된다. 각종 기행에다 동물원과 놀이기구까지 있는 대저택을 조성해 네버랜드라는 이름을 짓고 호화 생활을 한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어서 종이 신문사는 잭슨의 기사가 가장 짭짤한 수입이었다. 잭슨은 어렸을 때부터 게이였다는 둥,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으로 성기능을 잃었다는 둥, 5세 전후의 남자 아이만을 좋아하는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졌다는 둥, 온갖 추측성 기사가 신문을 도배했다. 없는 것도 만들어 내는 것이 유명인의 사생활 보도 아니던가.
생전에 잭슨은 두 번의 결혼을 한다. 1994년 리사 마리와 결혼, 2년 후 이혼, 1996년 잭슨이 다닌 피부과 직속 간호사였던 데보라 로우와 결혼, 3년 후 이혼을 한다. 잭슨은 두 번째 아내에게서 자녀 두 명을 낳는다. 아들과 딸이 완전 백인이다.
이때부터 마이클 잭슨은 언론과 연예계의 집중 포화를 받는다. 수퍼 스타의 결혼 생활이 궁금한 대중들이 많아 파파라치들도 언론도 물때를 제대로 맞았다. 마이클은 자신의 핏줄이라 주장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언론 보도로는 백인이 기증한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으로 임신한 아내 데보라가 아들과 딸을 연달아 낳는다. 아내는 씨받이였던 셈이다. 두 아이를 낳자 잭슨은 아내와 별거에 들어갔다 갈라 선다. 데보라는 이혼 후 남편과 결혼 생활에 관해 발설하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썼다고 고백한다.
두 번째 아내와 헤어진 마이클 잭슨은 곧 세 번째 아이가 생긴다. 이 아이도 완전 백인인데 생모는 밝혀지지 않는다. 언론은 이 아이 역시 백인 정자 인공수정으로 백인 대리모가 낳았을 것으로 보도한다. 잭슨은 이 아이도 자신의 핏줄이라 주장하는데 얼굴 성형하면서 흑인 DNA까지 백인으로 바꾼 것일까.
이후 마이클 잭슨은 남자 아이를 성추행했다는 죄목으로 각종 소송에 휘말린다. 호모 포비어들의 집중 포화에 황제의 이미지는 끝없이 추락한다. 그리고 2009년 여름 약물 과다 사용으로 세상을 떠난다.
나는 잭슨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어도 그의 인생에는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드러낼 수 없었던 정체성과 가짜 결혼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을 그의 인생은 얼마나 허전했을까. 황제의 화려함 뒤편에는 혼자 간직해야만 했던 큰 그늘이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때 유행했던 잭슨의 노래 하나 올린다. 당시 잭슨의 춤도 광풍이었다. 소풍 갔을 때인지 아니면 야유회였는지 친구 하나가 이 춤을 춰서 엄청 환호를 받았다. 아마도 그는 지금 배 나온 대머리 중년이 되어 마누라에게 설설 기면서 살 것이다.
댓글
hama첫댓글 21.08.27 22:37 새글
저때는 흑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시대였어서 벗어나고 싶었던거 아닐까요? 흑인중에 마이클잭슨처럼 성공했던 사람이 없었던 시대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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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긍정선생21.08.27 23:11 새글
이거도 잘못된 기사입니다.
MJ는 자라면서 백반증 증세가 나타나서 흑인과같이 자연스럽게 보이기위해 어두운 화장을하다가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백반증 범위가 넓어져서 백인분장을 한것입니다.
바다옆에서10:09 새글
king of pop
고로
17:09 새글
농담 아니고, 지금 마이클 잭슨 노래 듣고 있었네요.. 내 인생의 가수 4대천왕 마이클, 휘트니, 마돈나 그리고 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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