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난곡동에서 죽음의 방식 - 전장석

마루안 2021. 8. 12. 19:27

 

 

난곡동에서 죽음의 방식 - 전장석

 

 

마치 오랫동안 준비했던 것처럼 죽음은

골방에서 사흘 만에야 꺼내졌다

이웃집 할머니의 말이 적중했다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들키고 말았다

잠든 척하며 119차에 실리기 전까지

죽음은 가장 평온한 잠에 떨어져 있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찬

틀니를 물고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최초의 발설자가 얼굴을 쓰다듬자

식은 손이 침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의심할 여지없는 자연사라며

구급대원들은 시신을 재빨리 수거하였다

가족들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어쩌면

목격자들이 유가족이 될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가파른 언덕길 꼭대기 삶이었다니

이제 길을 내려가야 하지만

 

팽팽한 곳을 향해 그는 처음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딱 한 번만! 하고 눈 뜨려다

내려가는 길을 보고

안심한 눈을 다시 감았다

 

 

*시집/ 서울, 딜큐사/ 상상인

 

 

 

 

 

 

아직도 봉천동에 사세요? - 전장석

 

 

아직도 봉천동에 사세요?

 

네 삶의 꽃말이 뭐냐고 묻기에

하늘을 받들고 사는 동네라고

계절이 오지 않아서 늘 꽃 진 자리라지만

저녁노을엔 누구나 꽃처럼 붉게 물든다고

 

하늘의 문을 가장 먼저 열고 닫는 곳

어둠의 수문에서 초저녁별이 쏟아지는 곳

 

그래도 봉천동에 사실 거예요?

 

자주 부르는 노래가 뭐냐고 묻기에

하늘 아래 떠도는 바람이라고 했다

비탈이 쓰려졌다 다시 일어난다고 했다

리어카가 힘겹게 공중변소를 끌고 간다고 했다

까치고개였는데 꽃들이 몹시 울렁거린다고 했다

하늘만큼 땅이 높은 동네엔

가난보다 부끄러움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데

 

언제까지 봉천동에 사실 거예요?

 

누군가가 또 물으면

가슴 안쪽 그리움의 텃밭에 꽃씨를 뿌려

두근거리는 발화의 소리, 그대 밤새 잠들지 못하게 하리

 

 

 

 

# 전장석 시인은 2011년 <시에>로 등단했다. 2019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한국경제신문사에 재직 중이다. <서울, 딜쿠샤>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