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동백의 여백 - 박남준

마루안 2021. 7. 1. 21:56

 

 

동백의 여백 - 박남준

 


동박새가 찾아와 쉴 자리가
동백의 여백이다
그늘을 견딜 수 없는 숙명도 있지만
다른 나무의 그늘에 들어야
잎과 꽃의 여백을 만드는 나무가 있다
동백의 여백을 생각한다
혼자 남은 동백은
지독하도록 촘촘하게
모든 여백을 다 지워서
가지를 뻗고 잎을 매달아
그 아래 올 어린 동백의 그늘을 만든다
곁에 다가와 노래하는 자리가

그 사람의 여백일 것이다

여백을 가지고 있는가

누군가의 여백을 위해 스스로

그늘을 가득 채워 버렸는가

 

 

*시집/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사람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 박남준

 


불시착의 연속에 있었다
바오밥나무들이 점등을 시작한
비상활주로의 길 끝에 사막은 시작되었다
사막이 공간이동으로 뛰어든 이유는
불시착의 그 처음이 발단이었다는 정도로 생략하겠다
그리하여 그리움이 사막을 메아리쳤다

파상공세를 시작한 풀들에 쫒겨
앞마당에 왕마사를 깔고부터였다
사락사막
발자국소리마다 사막이 전염되어 불려 나왔다
불시착한 철새들의 울음이 묻혀 있었다
홍고린엘스 노래하는 모래산이라는
남고비사막의 첫 밤처럼 저녁이 드리워지고
곧 하늘이 모자라게 별들이 뜰 것이므로
나는 보드카와 방랑의 담요를 두르고
사막의 밤으로 누울 것이다

 

밤하늘에는 불시착을 한 채
이 별에서 살아온 시간이 상영될 것이다
오 새드 무비♬~
서툰 배역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고통스러웠다
잔기침쟁이 장미와 사막여우처럼
길고양이 룰랄라도 충분히 길들여진 채
이 별의 적응기를 끝냈으므로 나를 떠나갔다 하여
염려하지 않기로 한다
돌아갈 시간이 머지않다는 것을 안다
엔딩 자막이 올라오면 점멸하는 활주로에
꽃을 피우지 못해 울던 사구아로 선인장의 곡성이
화면을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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