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 시집을 뚫어져라 읽고 있다. 고태관의 시집 <네가 빌었던 소원이 나였으면>이다. 그의 유고 시집이다. 보라색 표지에 쌓인 시들이 처연하다. 그의 시를 읽고 나면 유고 시집이란 선입견을 지우고도 이런 느낌이 들 것이다.
이 시집이 나오기 전까지 피티컬이란 존재를 몰랐다. 알았다 해도 큰 관심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시를 노래하는 랩퍼였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고태관에 관한 기사를 찾다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그 영상을 보고 그가 어렸을 때부터 시인이 꿈이었다는 걸 알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고 20년 동안 신춘문예를 투고했다. 번번히 낙선을 하면서도 매년 12월이 되면 신춘문예 투고병이 도졌다. 학교 친구들은 이미 등단을 한 시인이 많았다. 예전 신림동 고시촌에서 매년 낙방을 하면서 늙어 가는 고시 낭인이 생각났다.
그의 시를 읽은 사람들이 시집을 내라고 권했으나 그는 사양했다. 이렇게 좋은 시를 썼는데도 내가 그의 시를 한 편도 읽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랩퍼보다 시인이 어울렸다. 아니 그는 등단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시인이었다.
빼어난 시가 촘촘히 박힌 시집을 덮을 때마다 서른 아홉이라는 숫자가 시리게 다가온다. 그는 서른 아홉에 병으로 죽었다. 얼마 전 그의 1주기에 맞춰 첫 시집이 나왔다. 시 한 편 한 편에서 긴 여운이 묻어 나온다. 이제 그가 좋아졌다. 오래 남을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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