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다 - 이규리

마루안 2021. 6. 11. 19:30

 

 

바다 - 이규리



새벽빛을 오래 바라보다가
볶은 콩 네 알을 씹으며 속쓰림을 달랬다

우리는 아침을 함께 본 적이 없다

데려오지 못하는 아침에게
질문하는 대신 나는 답을 줄여나간다

내가 원하는 날짜가 이 생엔 없을 것

새벽빛은 보라와 실어와 분홍의 순서였고
마음은 적요와 파랑과 고립의 순이었다

배들이 떠 있을 뿐 나아가지 않는 평면을

종일 바라보았다
그런 것
적막이야
나의 말도
두 개의 흔들림과 두 번의 수평

흔들리지 않는 배들은 고통이 아래에 있을까

마음은 무엇입니까
어린 사람이 큰 사람에게 물었다는데

갈 때는 보이는 쪽, 올 때는 어두운 쪽
모르긴 해도 누구나 흔들리고 있었을 것

잘하려던 아침은 울곤 하여
잘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마음이 나을 것이다

내가 점점 사소한 일이 되었다는 걸 잊었다 해도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울음 - 이규리

 

 

그늘만 찾는 풀들이 있다 뜻한 바 있어 택한 낙향처럼 그늘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다 그 자리 온 여린 생들, 착 깔린 이끼와 자잘한 괭이밥, 여기까지 온 마음을 다 안다 할 수 없어도

 

내 어둠을 살라 당신을 옥죄었던 그늘도 생각하면 어두운 날들의 축제였다

 

그늘이라지만 그늘은 둘레를 따로 두지 않고 제자리라 삼지도 않는다 험로를 어떻게 왔을까 싶지만 동류끼리는 셈이 있는 법이니

 

누구 간섭하지 않으면 좋으리라 가만히 두면 되리라 그 고요 안에도 다툼이 있는데 그건 그들만의 생기라 했다 최소의 의지라 했다

 

왜 그걸 비켜가라 했을까

 

햇빛도 제 안의 살의를 감추느라 그늘을 둔 것인데 쓰윽 베이던 차디찬 음해는 습한 세계는

 

누구나 제 폐허가 막막해서 푸아푸아 울던 시절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