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지구로 달려온 떨림 - 김익진

마루안 2021. 6. 10. 21:57

 

 

지구로 달려온 떨림 - 김익진

 

 

그를 인용하지 말라

차가운 어둠 속의 불일 뿐이다

허허망망 달리다 보니

네가 본 화염이다

그를 평범한 시선으로 보아라

그는 어느 창문에도 얼룩을 남기지 않는다

웅크리다 직교하는 빛일 뿐이다

그는 진원지에서 뜨거웠다

차가움의 극한을 뚫고

지구로 달려온 떨림이다

 

어둠이 전부일 때부터

그 없이는 아무 날도 없었다

그는 세상보다 빨라

언제나 어디서나 혼자였다

너희는 모두 그로부터 왔다

모든 기술도 그로 이루어졌다

그에게는 신화 같은

수백억 광년이 있다

 

그 세월이 있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그 없이는 아무 날도 없다

 

 

*시집/ 사람의 만남으로 하늘엔 구멍이 나고/ 천년의시작

 

 

 

 

 

 

우주의 격자 - 김익진

 

 

우주의 장엄함 속에

우리의 삶은 미미하고 순간적이다

별빛 아래 숨겨진 각자의 비밀들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허로

어둠의 차가움을 인내한다

 

백뱅 후, 은하 제국 속 우리는

별 먼지에서 온

우주의 격자(格子)다

 

수백억 광년 직조된 우주의 간극

어둠 속의 불가사의한 존재는

별들의 화재로 돌고

쏜살같이 달려온 우주의 증거는

환자를 휘젓고 번성한다

 

은하계 구석진 곳에서

우리는 겨우 균형을 잡은 채

순간순간 위험하고

어둠 저편에서 온 별들은

이곳에서도 가난하다

 

지구는 삶의 요람일 뿐 터전이 아니니

우리는 오늘도

은하로 가기 위해 부품을 만들지만

밤은 별들에게 승계되고

딸깍발이 친구의 지팡이처럼

궤도 위에서 위태롭다

 

 

 

 

 

# 김익진 시인은 경기도 가평 출생으로 독일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2007년 <월간 조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회전하는 직선>, <중력의 상실>, <기하학적 고독> 등이 있다. 현재 한서대 항공신소재공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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