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세한 - 김유석

마루안 2021. 5. 17. 21:59

 

 

세한 - 김유석

 

 

밤 깊도록 서랍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묵은 편지다발 훔쳐 펼치고

다락방 생쥐

생고구마 갉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버리고 싶은 것들을 털며

밤도둑이 들러 가고 있었다.

 

세상 어느 구석을 돌아와

늦은 자리를 펴는 잠 속

숨겨둔 애인의 발씨처럼 눈은 쌓이고

 

늙은 감나무를

밤새 어디로 데려갔다 오는지

들판까지 마당이 나가 있는 아침.

 

두더지처럼 눈밭을 기는 것이 있다.

잡아먹으면 약이 될 듯도 싶은

 

세월이라는 저 짐승.

 

 

*시집/ 붉음이 제 몸을 휜다/ 상상인

 

 

 

 

 

 

회(廻) - 김유석


복사꽃 만장을 세우고 여든 번째 봄 사행으로 들러 가네.


마을에서 뒷산 사이, 한평생 똬리 튼 길 허물처럼 벗겨지네.


바늘땀 없는 옷을 입은 나비 흰 종이꽃에 앉아 떠가네.

 

감자밭 가는 노인의 귀에는 안 닿고

 

다음 생은 사람으로 올지 모를 소에게만 들리는 나른한 요령소리.

 

노자를 꽂은 새끼줄에 붉은 고추 매달던 문간 금줄이 겹치네.

 

아기 울음을 내며 떨어지는 복사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