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일상이 엉망이지만 그래도 영화는 끊지 못한다. 공연장이나 전시장 나들이는 아직 꿈도 못 꾸고 가능하면 식당 출입도 자제하거나 머뭄을 최소화한다. 모임이나 술자리 참석도 안 간 지가 까마득하다. 인간 관계 소원해질 염려보다 방역수칙이 먼저라는 생각이다.
둘 이상 갈 때 빼고는 영화관 출입은 보통 주말 오전을 이용한다. 인기 영화보다 남이 잘 안 보는 다큐 영화나 독립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런 영화일수록 오후보다 오전 시간에 많이 상영한다. 관객이 거의 없어 거리두기 걱정도 없고 요금도 싸니 일석이조다.
얼마전 토요일 오전에는 나 혼자서 영화를 봤다. 극장을 자주 못 가서 생긴 영화 굶주림을 넷플릭스로 푼다. 극장에서 보는 것만큼의 감동은 못 느껴도 잘만 하면 극장 나들이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영화관 못 가는 대신 영화 관련 서적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내가 보지 못했던 장면을 평론가들의 비평으로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던 중 이 책 <봉인된 시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작지만 영양가 있는 이 책은 문학평론가 신철하가 쓴 책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몇 편을 집중 해부했다.
오랜 기간 영화를 봐 왔는데 내가 좋아하는 감독 맨 앞자리에 이창동이 자리한다. 하나의 작품에 꽂히면 집중해서 그 감독의 영화를 보는 편이다.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전규환 등이 그런 감독에 속한다. 그 뒤로 봉준호, 함순례, 박찬욱 감독이다.
이 감독들이 만든 영화는 전부 봤다. 이창동 감독의 모든 영화를 지금껏 서너 번 이상 봤다. 아마도 박하사탕과 오아시스는 대여섯 번 이상은 봤을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 영화를 찍은 햇수는 꽤 길지만 그가 만든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의 저자 신철하는 이창동 영화를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했다. 버닝, 시, 밀양, 박하사탕 등 네 편의 영화를 다루고 있다. 이창동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거니와 작품성이 빼어난 영화들이라 평론가들의 예술적 해석은 무척 흥미롭다. 그동안 이창동의 영화를 해석한 책이 왜 없었을까.
신철하는 이창동 영화를 관통하는 비밀의 키를 암전과 분단체제로 압축한다. 이런 시각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구나. 여러 번 영화를 봤으면서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많아 새롭게 공부가 되었다. 그의 해석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어도 책을 읽으면서 이창동 영화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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