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언어물리학개론 - 박인식

마루안 2021. 4. 9. 21:12

 

 

언어물리학개론 - 박인식
-꽃과 단풍


꽃은 필 때
단풍은 질 때가
절정의 말

꽃이 피고
단풍이 지는 동안
당신과 내가 머물던 말의 자리들

다시 꽃이 피고
또 다시 단풍 질
말의 절정에서

꽃말은 밝은
아침문을 열면서
당신도 열어
나를 말하는 중

단풍말은 투명한
저녁창을 닫으며
나도 닫아
당신을 듣는 중

 

 

*시집/ 언어물리학개론/ 여름언덕

 

 

 

 

 


언어물리학개론 - 박인식
-고도는


어제 온다 해놓고
어제 오지 않았다

오늘 온다더니
오늘도 오지 않는다

내일은 온다지만
내일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작도 끝도 기다림뿐인 고도는
누구인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이가 고도의 정체를 고도의 아버지에게 물었었지

-나도 모른다 알고 있다면 이미 썼겠지

사무엘 베케트의 언어물리학이 창작한 고도는
인간의 시간 안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과거나 미래에서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타임머신일지도 모른다

 

 

 

# 작가 박인식은 1951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나무에게 사사한 언어물리학으로 글을 쓴다. 시집으로 <겨울모기>, <러빙 고흐 버닝 고흐>, <인수봉, 바위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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