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자목련 - 강민영

마루안 2021. 4. 6. 19:57

 

 

자목련 - 강민영


비에 젖은 목련 이파리 하나 주웠다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검게 멍이 든다

어머니 손등 저승꽃이
자목련 위에 피어난다

큰오빠 입에서 동그랗게 피워 올린
뜬구름 같은 도넛을 먹고
어머니는 마당에 각혈했다

젖은 솜이불을 이고 있는 듯
주저앉을 것 같은 나무는
멍든 사연을 수북하게 내려놓고도
머리가 무겁다

빗방울이 두드릴 때마다
위태로이 흔들리는 나무는
수십 년 동안
이별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홀로 깨어 뒤척이는

버리고 버릴 때마다
나무는 바람이 없어도 흔들리고
어머니는 혼자 떨어진다


*시집/ 아무도 달이 계속 자란다고 생각 안 하지/ 삶창

 

 

 

 

 

 

화전(花煎) - 강민영


진달래 화전 부쳐주던 어머니
빈 마대 자루가 되었다

우물이 깊어지는 봄
녹슨 대문 안에 잡풀들 무성하다

이불 속 노파를
간병인이 닦고 지운다

마른 봄빛을 담았던 속이 비워졌을까
헐거운 몸이 바닥에 흩어진다

분홍 치맛자락에서 빠져나온 어머니
멀리 산길을 둘러 붉게 풀어진다
화전 그림자와 함께 저승꽃으로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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