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슬프게 피었다가 아프게 지는 - 신표균

마루안 2021. 3. 29. 19:42

 

 

슬프게 피었다가 아프게 지는 - 신표균


사춘기를 앓기에는
봄날의 보폭이 너무 짧아
삼월이 종종걸음 친 다음에야 깨우쳤습니다

자목련 큰언니 부풀어 오른 암꽃이삭
버들강아지 칭얼대는 옹알이 듣고서야
브래지어 뽕 터진다는 것
삼월이 꼬리 감추려 할 즈음에야 눈치챘습니다

매화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 봄꽃 네 자매
홍역 같기도 하고 황달 같기도 한
젖몸살 돌림병 앓는 줄
삼월이 그림자 거둘 무렵에야 깨달았습니다

겨울 궁전에서 동상 견딘 얼음 공주
언 손 봄볕 쬘 사이도 없이
자매들 초경 앓는 신음 견디다 못해
알몸 분신공양, 봄을 익히고 있습니다

어린 처녀 연달래
시집갈 나이 진달래
혼기 놓친 난달래
무덤가 맴돌다 미쳐버린 금달래

슬피 피었다가 아프게 지는
진달래
그렇게 참꽃이 되었습니다


*시집/ 일곱 번씩 일곱 번의 오늘/ 천년의시작

 

 

 



연화무 - 신표균


이파리 하나 벙글 때마다
억겁의 시간 속으로 숨어드는 꽃술
합장한 우담바라 개화는 언제쯤인지
잠긴 미궁 문전 서성이며
다문 입술가에서 맴돌기만 하려는가
겹겹이 숨겨진 점층의 속내
다소곳한 바람에 한 자락 또 한 자락 숨 죽여 피어날 때
구천 헤매는 원혼 만개를 기다린다
청맹과니의 몽매함으로는 심장의 끝닿은 데 가늠할 수 없어
소매 끝에 매달리는 해원의 몸짓 더욱
가냘피 떤다
갈급한 불나방
풍경 흔드는 젖은 바람에 길을 잃었는가
서릿발 딛고 선 버선코
고깔 속에 숨어 우는 속눈섭 찾아
무소유의 가벼움으로
구름의 시간 지나 도솔천 건넌다

 

 

 

 

# 신표균 시인은 1942년 경북 상주 출생으로 서울신학대 신학과를 수료하고 서경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고려대 대학원을 문예창작 전공으로 졸업했다. 2007년 <心象>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어레미로 본 세상>, <가장 긴 말>, <일곱 번씩 일곱 번의 오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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