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몽골 소년의 눈물 - 안상학

마루안 2021. 3. 29. 19:37

 

 

몽골 소년의 눈물 - 안상학


염소가 풀을 뽑아 먹는 동안
사막은 저도 모르게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더 막막해져 가는 사막에서도
지금 여기 없는 꿈이 지금 여기 있는 아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

사막의 한 줌 낙타 똥 같은 어느 마을
할아비 밑에서 자라는 어미 아비 없는 소년을 만났다
할아비는 사위 집에 손자를 맡기고 떠났다, 멀어지는 트럭
발을 동동 구르며 마구 허공을 할퀴던 조막손 소년은
마을 어귀 모래언덕까지 올라가 한참을 바라고 서 있었다
몽골은 눈물이 드물다는데
소년의 눈물
광막한 곳에서는 헤어지는 시간도 길었다

지금 여기 없는 꿈이
지금 여기 있는 아픔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몽골식 이별을 보면서
양고기칼국수를 먹으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여태 만나 온 삶의 아픔과 그래도 살게끔 한 꿈의 거리를 생각한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간격을 생각한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려는 꿈은 어디서나 가혹하다
대체될 수 없는 꿈을 가지고 살기엔 사막은 막막하다
무슨 꿈이 있어서 무슨 아픔을 이기고 살기엔
지금 여기는 마음의 둘레가 너무 넓다
그래도 여기가 몽골이 맞다 하면
소년의 눈물도 드문드문 드물어질 것이다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걷는사람

 

 

 

 

 


마두금에는 고비가 산다 - 안상학


마두금 곡조에는 고비가 들어 있다
바람이 불어가고 새의 날갯짓 소리가 난다
낙타가 걸어가고 말이 내딛는 소리가 난다
몽골 사내들의 눈물 마르는 소리가 난다

마두금 곡조에는 세상에는 없는 소리가 난다
구름이 일어나 사라지고 꽃이 피고 지는 소리가 난다
별이 돋아나 스러지고 마유주 익어가는 소리가 난다
몽골 아낙들의 드넓은 눈빛 일렁이는 소리가 난다

고비를 노래하는 마두금 곡조에 고비가 운다
저마다의 슬픔과 아픔을 들으며 못내 운다
거짓말같이 바람이 울고
갓 태어난 새끼를 밀쳐내던 낙타가 젖을 물리며 운다
아닌 듯이 구름이 눈물짓고 꽃이 젖는다
별의 눈물이 떨어지고 바람이 글썽인다
고향을 모르는 사내들이 울고 엄마 품을 잊은 아낙들이 운다

마두금이 울고 고비가 운다

끝내는 울지 않는다 아닌 듯이 다시
바람이 가던 길 가고 새가 날아오른다
낙타가 일어나고 말이 앞발을 치켜든다
어디나 고향인 사내들이 양떼를 몰고
어디나 엄마 품인 아낙들이 낙타 젖을 내린다

마두금에는 언제나 고비가 산다 살아간다

 

 

 


# 안상학 시인은 1962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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