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버드나무로 올라가는 강물 - 박승민

마루안 2021. 3. 23. 22:12

 

 

버드나무로 올라가는 강물 - 박승민

 

 

등이 퍼렇게 얼어붙은 배(腹) 밑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파랑은 또 물컹, 물컹 흘러간다.

같은 몸이지만 다른 표정으로

 

한때, 밭에서 막 뽑아낸 배추 포기처럼 푸른 시절이 우세한 적 있었지만

폐나 위장, 내 기억의 일부는 수장고 속에서 죽었거나 죽어가는 중

아침마다 썩은 구취가 장롱 가득, 하품하는 입으로 아침 해가 들어온다.

 

몸이란,  죽은 시간과 살아 있는 시간이 겹치면서

서로 충돌하면서 그 무엇으로 살아가는 수로(水路).

어두워지는 한복판에서 빛을 오래 잡고 허물어져가는 물의 반짝이는 등을 본다.

 

죽은 몸이 푸른 봄을 허공에 걸어놓았다.

살아 있는 작은 잎이 관(棺)을 뚫고 시퍼런 꼭대기까지 삶을 끌고 간다.

 

 

*시집/ 끝은 끝으로 이어진/ 창비

 

 

 

 

 

 

끝은 끝으로 이어진 - 박승민

 

 

나는 이미 거기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이라 부르는 그 흔한 곳에
몸의 일부, 나빴던 내 과거의 행실까지도
거기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의 나는 여기의 무엇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색깔과 다른 형식, 다른 국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가끔 이상한 기분의 형태로.
핏속에 피부 밑에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나와 떨기나무 뿌리와 물과 공기와 달빛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을까?

태양의 시간을 받는 것은 지구이지만, 그 순간에도
달빛과 별빛으로 흘러들어 다른 존재를 무한 광합성 한다.

끝은 끝으로 이어진 세계의 연속,
존재는 늘 새로운 형식으로 우주의 일부로 다시 드러난다.



 

*시인의 말

 

이 봉쇄된 구(球) 안에서

전진하는 후퇴 같은 이 세계의 발열 앞에서

시의 스트라이크 존은 어디쯤일까.

어디를 향해 언어는 던져져야 하는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구나.....

 

김종철 선생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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