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정 안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 정선

마루안 2021. 3. 22. 22:31

 

 

정 안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 정선

 

 

빌어먹을,

불안이 템버린을 흔들며

낙산 골목을 통과했다

단 한사람이면 족했다

제아무리 단단한 소금벽들도

혀로 허물어지고

두 손을 묶는다 해도 퇴색은 오는 것

이별은 단계학습이 필요치 않아

눈빛을 마주치고도

못 본 척 즐거이 웃는 잔인한 맥주잔 너머

그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던가

거품을 바탕그림 삼아

오 초의 눈빛을 견디니

결별은 더욱 견고해졌다

결별은 떫은 말,

어떻게든 살아내야겠다는 캄캄한 의지

애초에 누군가와 무엇을 도모한다는 건

내겐 슬갑도적 같은 일

금관을 쓰고 배꼽에 피어싱을 한 그는

이제 바람의 소유물이 되었다

나는 증오로 살아냈다

그러니까 증오는 숨탄것들의 부드러운 절규

증오가 민달팽이로 귓불을 핥았다

까똑, 스마트폰은 저 홀로 공중에 응답하고

 

덮어쓰시겠니까?

 

 

*시집/ 마추픽추에서 띄우는 엽서/ 역락

 

 

 

 

 

 

관계도 둥지를 틀고 싶다 - 정선

 

 

관계자 외 출입금지

전나무 숲길은 어디론가 이어지고

철조망은 당당히 막아서는데

나는 쭈그러진 깡통을 철조망 안으로 세게 찬다

철조망 안과 밖은

보듬음과 보듬지 못함의 확연한 경계

누군가의,

그 무엇의 관계자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늘 관계하며 살아가고 있음이 거룩해지고

 

늦든 밤 아버지가 말을 걸자

맨유를 보던 여자아이가 쌍욕을 하며 부리나케 문을 잠근다

싫어 그냥 싫어!

항아리 무덤 같은 방에 거친 숨소리가 가득 찬다

 

노크하세요는 관계자만 출입금지라는 뜻

무언의 표찰을 걸고 아이는 귀를 막는다

서로의 폐부에 표창으로 박힌 치사량의 정적들

튕겨나가는 눈빛들

티브이 화면 밖에서도 날카롭게 빛난다

 

둥글게 네모나게

때로이 울퉁불퉁 삐뚜룸히

사랑의 발달로 치열해진 무형의 관계들

관계자들의 간격은 가슴과 가슴이 맞닿거나 혹은 벌어지거나

톱니바퀴처럼 촘촘해서

가까울수록 뒤꿈치를 서로 물고, 물리고

붉게 녹슬어 가면서도 마음 묶는 사슬

 

오늘 나는 유폐된 자

 

 

 

 

# 정선 시인은 전남 함평 출생으로 2006년 <작가세계>로 등단했다.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 <안부를 묻는 밤이 있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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