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大寒) - 김보일
나의 병을 알고 너는 깊이 울었다
쇄골 근처 너머 눈물 묻은 자리가 따뜻했다
당신이라는 눈물의 온도에
오랜만에 나의 몸이 새집처럼 흔들렸다
방아깨비는 제 몸의 연초록을 어떤 풀꽃에서 옮겨 왔을까
누가 보면대(譜面臺) 위에 어둠을 올려놓았나
어떤 음악이 나무들에게 겨울의 출구를 가르쳐 줄까
스무 개의 발가락으로 질문들을 모으다
꿈도 없이 잠든 칠흑의 밤이었다
*시집/ 살구나무 빵집/ 문학과행동
강 - 김보일
언제나 우리가 최후로 닿는 곳
그 너머의 거리가 우리를 출렁이게 한다
내 기억의 강물이 빠르게 방향을 트는 곳에서
내 살던 옛집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늘 아버지 같은 침묵으로만 가슴을 누르던
산은 개처럼 엎드려 우는데
알전구 촉 흐린 옛집 창에
마실 간 누이가 오지 않는 사이
개똥참외는 참 푸르게 익어만 갔다
쑥잎을 뜯으러 간 우리가
강가에 내다버렸던
좁쌀 같은 눈물도 저랬던 것일까
참, 이상한 일이지
강을 거슬러 온 미꾸라지가
하수구에서 벌떼처럼 닝닝거리던 것은
왜 그들은 강을 버리고 우리에게 왔을까
왜 우린 방을 버리고 강으로 갔을까
떠도는 것은 정처 없음으로 떠돎을 완성하지 못하고
강물 가장자리에 밀려와 누운 모래알처럼
우리가 늦게 돌아와 누운 다락방에서
벽지 속에 핀 해당화 붉은 꽃을 보고 잠들면
그 강의 초록붕어들이 우리를 따라와
알 수 없는 언어로 물방울들을 피워 올렸다
# 김보일 시인은 1960년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기업의 홍보 기획 일을 짧게 한 뒤로, 줄곧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했다. 2017년 <문학과행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살구나무 빵집>이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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