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대한(大寒) - 김보일

마루안 2021. 1. 15. 21:11

 

 

대한(大寒) - 김보일

 

 

나의 병을 알고 너는 깊이 울었다

쇄골 근처 너머 눈물 묻은 자리가 따뜻했다

당신이라는 눈물의 온도에

오랜만에 나의 몸이 새집처럼 흔들렸다

 

방아깨비는 제 몸의 연초록을 어떤 풀꽃에서 옮겨 왔을까

누가 보면대(譜面臺) 위에 어둠을 올려놓았나

어떤 음악이 나무들에게 겨울의 출구를 가르쳐 줄까

스무 개의 발가락으로 질문들을 모으다

꿈도 없이 잠든 칠흑의 밤이었다

 

 

*시집/ 살구나무 빵집/ 문학과행동

 

 

 

 

 

 

강 - 김보일

 

 

언제나 우리가 최후로 닿는 곳

그 너머의 거리가 우리를 출렁이게 한다

내 기억의 강물이 빠르게 방향을 트는 곳에서

내 살던 옛집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늘 아버지 같은 침묵으로만 가슴을 누르던

산은 개처럼 엎드려 우는데

알전구 촉 흐린 옛집 창에

마실 간 누이가 오지 않는 사이

개똥참외는 참 푸르게 익어만 갔다

쑥잎을 뜯으러 간 우리가

강가에 내다버렸던

좁쌀 같은 눈물도 저랬던 것일까

참, 이상한 일이지

강을 거슬러 온 미꾸라지가

하수구에서 벌떼처럼 닝닝거리던 것은

왜 그들은 강을 버리고 우리에게 왔을까

왜 우린 방을 버리고 강으로 갔을까

떠도는 것은 정처 없음으로 떠돎을 완성하지 못하고

강물 가장자리에 밀려와 누운 모래알처럼

우리가 늦게 돌아와 누운 다락방에서

벽지 속에 핀 해당화 붉은 꽃을 보고 잠들면

그 강의 초록붕어들이 우리를 따라와

알 수 없는 언어로 물방울들을 피워 올렸다

 

 

 

 

# 김보일 시인은 1960년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기업의 홍보 기획 일을 짧게 한 뒤로, 줄곧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했다. 2017년 <문학과행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살구나무 빵집>이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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