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첫눈 - 조하은

마루안 2020. 12. 8. 19:30

 

 

첫눈 - 조하은


육성회비 봉투를 비어 있는 채로 들고 간 날
등을 떠민 담임선생님은
빈 봉투 대신 들고 온 날고구마로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빈 봉투와 생고구마가 날아오르던 교실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의자를 들고 벌을 섰다

미열이 온몸으로 흘러들어와 마구 돌아다녔다
헛것이 보였다
운동장 귀퉁이 사시나무도 시름시름 앓았다
달아오르는 날이었다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시집/ 얼마간은 불량하게/ 시와에세이


 

 

 


그렇게 배웠다 - 조하은


육성회비가 없어 집으로 쫓겨 가던 날 밤
우우
비바람이 불었다

우산 없는 운동장에 우라질, 비가 쏟아졌다
숙자 엄마가 싸다 준 거한 저녁 식사에 배부른 담임은
이미 숙직실이 떠나가라 코를 골 것이다

담임선생의 서랍 속
중간고사 답안지도 같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천둥 속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우우

중간고사 1등을 했다
복수란 단어의 뜻을 그렇게 배웠다

 

 

 

 

# 조하은 시인은 충남 공주 출생으로 2015년 <시에티카>로 등단했다. <얼마간은 불량하게>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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