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랑 노래 - 심종록

마루안 2020. 11. 27. 22:07

 

 

사랑 노래 - 심종록
-홍시


온기 가진 것들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려고 부산스러운 세상
기별 없는 날들 견디던 마음 흙벽으로 주저앉습니다

잊힌 걸까요.

기우는 햇발 동쪽으로 긴 그림자 끌며 설핏해지는데
황혼으로 쌓이는 소실점 앞에 선 사람이라서, 차마 사람이어서 세상을 지워버리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노라는 맹신 밀물로 차오르는 밤
나무는 폐부 깊숙이 숨겨 두었던 심지를 돋우고 그리움의 스위치를 올립니다

곧 다녀가시겠지요 기별이라도 주시겠지요
단념하지 못하는 마음 고봉으로 붉어지는 아침입니다


*시집/ 신몽유도원도/ 도서출판 한결

 

 




낙원동 - 심종록


1.
꽃들을 밟으며 노병들이 행진한다 꽃들의
시체를 태우며 북이 울린다 둥둥둥 폭풍이
몰려온다 신나는 구경거리
낙원동에서는 죽음도 즐거운 이벤트 환하도록
찰나를 소비하는 일이라서 누구도 침을 뱉지 않는다.

2.
승리 승리 기필코 우리 승리하리라 우비를 뒤집어 쓴 역전의 노병들
행진한다 쏟아지는 홈통 속 빗물 역류하는
차도를 저벅저벅 밟으며 낙원이여 만세! 美國이여 만만세!
태극기 성조기 찢어버를 듯 휘몰아치는 폭우 속에서
미사일이 화염을 토해내며 날아간다
새 감람 잎 입에 문 비둘기처럼

3.
종탑은 기대에 차 있다
음경확대수술 받기 위해 수술대에 누운 하느님처럼
무거운 짐 지고 저 종루 오른 적 있다
구멍 뚫린 아나방을 위태롭게 밟으며 하늘 길을 올라갔다
누가 뜨거운 욕망의 감각에 저항할 수 있으랴
종탑은 빳빳하게 세운 남근을 새롭게 드러낼 것이다
발기한 십자가를 숭배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사람들
이를 악물기도 전에 사정해버리듯 아침이 오고
폭우 쏟아진다 나는 불발 미사일처럼 주저앉아 가림막에
가려진 종탑을 바라본다 시간을 통음한다 낙원동의
시간은 하수분 비우고 비워도 대책 없이 흘려 넘친다
실로암 물빛으로 아릿하게 휘돌아가는 낙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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