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 - 정충화
소리로 깨친 사람을
귀명창이라 한다지
요사이 전에 없이
귀가 밝아졌다
들끓는 소리들이
밤의 중문을 열어버린 뒤부터
내 잠은
만 리 밖 타향이다
밤과 나 사이
공명의 진폭이 얼마나 젊기에
차차로 어두워져야 할 내 귀가
아직도 이리 밝은 것이냐
*시집/ 봄 봐라, 봄/ 달아실
불면 2 - 정충화
대팻밥처럼 얇디얇은
잠의 부스러기마저 흩어지자
나의 밤은 항로를 잃어버렸다
닻 내릴
작은 섬조차 보이지 않는
난바다에서
끝없이 표류 중이다
잠의 몰골로 이끌어줄 예인선은
올 기미도 없고
고장난 배의 갑판에서
애꿎은 시간만
꾸들꾸들
말라비틀어지는 중이다
*시인의 말
충주,
이 고을에 세 들어 산 지
어언 십 년이다
그간 쌓은 정만도 서 말은 넘을 게다
식물을 들여다보고, 길을 걷고,
이곳 방언을 익히며 살다보니
어느 세월에 이순을 넘어
그새 해거름녘에 다다랐다
이제 저녁이 있는 삶을 찾을 나이에 이르렀는데
그 삶을 어디서 찾을지
캄캄하다
식물 애호가를 자처하면서
근자에 나무 한 그루도 심지 않은 주제에
설익은 활자를 입히겠다고
나무에게 또
죄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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