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증 - 류성훈
나는 흙먼지처럼 왔으니
저녁이 혼인비행처럼
능선을 넘는 것을 본다
이불 속에서 평생 나오지 않을 듯
버스를 따라 우리는 동면놀이하러 가자
붉은 구름에 감기는 바람들을
손등으로 짓이기는, 벌써
저무는 눈꺼풀들을 비벼 보면서
바람이 흙먼지를 데려올 때
홍채는 눈을 가누지 못하고
정류소는 늘 성가신 하교를 기다린다
눈부터 저려 오는 저녁들은
앓아야 할 아픔도 주워 들 그리움도 없어
유감인 건 혈압도 간 수치도 아닌
날파리 떼마저 피해 가는 길
아무도
아무에게도 열병이 되지 않는
*시집/ 보이저 1호에게/ 파란출판
보이저 1호에게 - 류성훈
물통 속에 밤이 퍼진다
내 붓은 차갑게 씻기고
안부라는 건
대개 꿈풍선일 뿐, 눈부신
우주 방사선 속에서
버릴 꿈이 없어서, 널 닮은
연체동물을 그렸다 저 외행성 출신의
물기 없는 입을, 활짝 핀
중력 없는 팔들의 짙푸른 기별을
축하한다
악수하는 법도 몰랐으면서
우리는 늘 몽상이라는 교신 위에서
지구에서의 너를 그렸으니
한때 색색 풍선보다 더 필요했던
날숨을, 더운 붓을 휘갈겨 본다
화장실 창밖이 밝아 오고
벌어진 해바라기가 그려져 있다
그 금빛 껄끄러움 또한
교신,이라 생각했던 물음을 안고
나는 지금 태양권의 어디쯤을
쫓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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