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에 기대어 - 성선경
가을의 단풍을 보려거든 그 자태만
볼 게 아니라 그 아득함을 보아야 하리
저녁의 노을을 보려거든 그 붉음만
볼 게 아니라 그 막막함을 보아야 하리
수령이 사백 년이라는 고향 어귀의
두 그루 은행나무와
두 그루 느티나무가 단풍 들었다
아득하게
막막하게
단풍 들었다
저녁노을도 곱게 단풍 들었다
아버지 가신 지 꼭 일곱 달 만이다.
*시집/ 네가 청둥오리였을 때 나는 무엇이었을까/ 파란출판
11월 - 성선경
다시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노래여
그리움 목메이게 마음껏 붉어라
나는 지금껏
돌아가고 싶은 그날이 없어
내 흰 머리칼은 단풍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서슬 푸르던 세상의 잎들이
노랗게 빨갛게 물이 들 때
노래도 사랑도 낙엽처럼 다 잊히는
이미 한 해도 다 지난 옛일
이제 내 마음도 한 걸음 뒤로 물러앉는다.
떠나간 마음과 떠나지 못한 마음이
철길처럼 나란해지는 목메인 11월
나는 달의 두건을 쓰고 경건해진다.
찬 이슬에 더 초롱초롱한 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