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 - 김유석
싸락눈 몇 됫박 들판에 안치는 저녁이다.
작년에 끌고 간 줄 토막토막 끊어 오는 기러기 울음 굴핏한 어스름.
부메랑 날갯죽지들 붐비는 공중을 바라보며 한 철 들러 갈 것들에게 또다시 가슴을 앗긴다.
어느 추운 고장의 습속일까, 바닥을 짚기 전 몇 번이나 파닥거리는 뜨내기들.
제 기척에도 놀라는 것들은 저런 식의 설은 기억법을 가지고 있어서 한 곳 정들지 못하고 떠도는 것일 게다.
공중을 건널 때와 바닥에 내리는 울음이 설핏 다름을,
가뭇없는 작은 애비 기별인 냥 초저녁잠 설치는 서당집 노모 가는 귀 섧도록
주인 바뀐 논배미에 주둥이를 박고 우는 것들의 발목이 붉다.
*시집/ 붉음이 제 몸을 휜다/ 상상인
십일월 - 김유석
새들이 왔다.
그 전날, 먼 이역 순회공연을 돌아온 가수의
쉰 목처럼
아이들을 불러들이며 저무는 어미의 목소리처럼
작년에 흘렸던 울음통 다시 지고
한쪽 어깨가 느슨해질 때마다
한 방울씩 떨어뜨려 간격을 조이며
공중에 긋는 한 줄의 밑줄..... 기러기 떼가 왔다.
나는 돌아오지 못한다, 떠난 적이 없으므로
무리 지을 줄 모르므로
저 밑줄 위에 울음을 적지 못하고
그 줄 끌어내려 저무는 이 들판
봉하는데 쓸 뿐
한 철 머물다 뜨질 못한다.
# 김유석 시인은 1960년 전북 김제 출생으로 전북대 문리대를 졸업했다. 198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상처에 대하여>, <놀이의 방식>, <붉음이 제 몸을 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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