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새벽 세 시, 나의 바다는 - 윤석산

마루안 2020. 10. 20. 22:17

 

 

새벽 세 시, 나의 바다는 - 윤석산


새벽 세 시에 깨어나 잠이 오지 않는다고 무어가 걱정이겠는가.
잠이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 대로 뒤척이다가
어질머리로 이제 막 밝은 햇살 퍼져오는 시간쯤
다시 어설픈 잠이 든다고 무어 대수겠는가.
어차피 마땅히 나가야 할 곳도, 보아야 할 일도 없는데
깨어나면 깨어나는 대로, 잠이 들면 잠이 드는 대로
어질머리면 어질머리대로
잠들었다가는 다시 깨어나는 게
이즘의 나의 삶인데

새벽 세 시, 나의 바다는 그만 더 도망도 칠 수 없는 해역에 갇히어, 다만 출렁거리고 있구나.


*시집/ 햇살 기지개/ 현대시학사

 

 




저녁 9시 무렵의 그 사내 - 윤석산


저녁 9시 무렵
전철 경로석에 앉아 졸고 있는 그 사내
60은 족히 넘었고
그래서 70을 바라보는 나이
그러나 아직은 가장으로 그 의무를 지녀야 할 나이
기쁨도 슬픔도 없는 표정으로
다만 경로석 한 구석이나 차지하고 앉아
흔들리는 전철에 몸을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9시 무렵
잊혀버린 한 덩어리 컴컴한 어둠이 되어
꾸역꾸역 잠이나 몰아가는,
덩그마니 비추는 전철 불빛 아래
고단한 주름살 더없이 깊이 패어만 가는데.
나 언제부터 저 자리에 앉아
저렇듯 흔들리고 있었는가.
전철은 온몸 덜껑이며, 알 수 없는 어둠 속 달리고 있는데




# 尹錫山 시인은 1947년 서울 출생으로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다 속의 램프>, <온달의 꿈>, <처용의 노래>, <용담 가는 길>, <적>, <밥 나이, 잠 나이>, <나는 지금 운전 중>, <절개지>, <햇살 기지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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