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후렴 - 김대호
인공감정으로 울고 웃는다
감정은 돈 몇 푼과 건강 걱정 비염 따위로 구성되었다
나는 자연에서 격리되었기에 어떤 감정도 자연적이지 않다
자연적인 것은 순식간에 터지는 긴 하품뿐
하품의 후렴인 눈물 찔끔
흰 눈이 지루하게 내렸다
주황 파라솔이 하얗게 변했다
이 모든 풍경은 인공감정으로 1초 만에 읽어낼 수 있지만 자연적인 감정으로는 일생을 허비해야 한다
당신이 사과 몇 알이 든 봉다리를 건넸다
나는 사과의 감정을 깎아 다시 당신에게 건넨다
우리는 이쯤으로 지내는 게 젤 편한 것 같아
사과를 먹으면서 말했다
모든 과일의 단맛에는 인공감정이 함유돼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과일에는 과거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당신은 나의 과거
과거는 움직인다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걷는사람
당신은 슬픈 주소를 가졌다 - 김대호
일몰이 시작되는 바닷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쪼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당신
몰락한 무엇이 눈물로 흘러내리다가 점점 휘발된다
집이 불온한,
당신은 슬픈 주소를 가졌다
일몰은 당신이 돌아갈 행로를 지운다
집을 떠나올 때
조립식 판넬에 빗방울이 토닥토닥 떨어지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바다
주인을 잃은 애완견이 방파제 쪽으로 뛰어갔다
당신은 해안의 모래를 걷기 위해 바다에 왔다
밝은 곳에서 내내 어두웠던 당신
어두워서 눈물만 부표로 떠 있는,
당신이 걷는 모래는 시간의 지층이 모든 것을 용서한 증거들이다
발이 푹푹 빠진다
지금도 조립식 판넬엔 비가
토닥토닥 내리고 있을지도 몰라
# 김대호 시인은 경북 김천 출생으로 2012년 <시산맥>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천강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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