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드므 - 성선경
반소매에 스친 바람 기운이 서늘하니
기러기 그림자에 단풍이 더욱 붉고
지난 무더위는 어떻게 잘 이겼는지
구철초가 피자 소식 없는 친구가 그립다
하늘이 높고 까치 소리 맑으니
멀리 있는 자식이 더욱 보고파라
국 한 그릇, 밥 한 그릇, 간장 한 종지
해도 저물기 전에 서둘러 저녁을 마주하니
백일홍은 백 일도 되기 전에 벌써 지고
국화 분 유유히 저 혼자 향기로워
숭늉 한 대접에 벌써 달이 뜬다
쓸데없는 나이를 자꾸 먹으니
반주 없이도 취기가 돌아
내일은 꼭 한번 고향엘 다녀오리라
섬섬히 궁핍한 마음을 내자,
생각의 벽에 걸린 그림에 댓잎 소리가 쏴 하다.
*시집/ 네가 청둥오리였을 때 나는 무엇이었을까/ 파란출판
한참 - 성선경
내가 너에게 가는 길은 멀고 멀어 한참
걷고 걸어도 닿지 않는 길 한참
가다 쉬다 걷다 쉬다 아주 한참
술이나 한 잔 하고 갈까
담배나 한 대 하고 갈까
걷고 걸어도 닿지 않는 길 한참
가다 쉬다 걷다 쉬다 아주 한참
내가 너에게 가는 길은 닿지 않는 길 한참
한 삼십 리만 걸으면 될 것 같아서
걷고 걸어도 닿지 않는 길 한참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길 한참.
# 성선경 시인은 1960년 경남 창녕 출생으로 1988년 〈한국일보〉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파랑은 어디서 왔나>,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봄, 풋가지行>, <진경산수>, <모란으로 가는 길>, <몽유도원을 사다>, <서른 살의 박봉 씨>, <옛사랑을 읽다>, <널뛰는 직녀에게>, <까마중이 머루 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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