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목욕탕 옆 김밥집 - 김요아킴

마루안 2020. 9. 9. 18:58

 

 

목욕탕 옆 김밥집 - 김요아킴

-금곡동 아파트

 

 

독서실 의자에 붙잡혀 있다가

수제비로 허기를 달래는 딸아이에

아비는 김밥 한 줄을 더 보태었다

 

서로의 어깨가 연골처럼 부딪히는 자리,

무작정 밀치고 들어와 고집 묻어나는

쇳소리로 주문을 거는 노인들

 

불조심 마크 선연한 모자 속

땀내가 국물처럼 피어오르자, 배배 꼬인

면발이 태극기마냥 젓가락에 나부꼈다

 

서로 다름을 모두 붉은 낙인으로 찍어대던,

분노는 배고픈 북쪽의 일용할 양식이 될

쌀 한 톨에까지로 이어졌다

 

김 속의 밥알을 곱씹다가, 딸아이는

그 빨간 깍뚜기를 집다 말았고, 아비는

서둘러 잔돈을 지갑에 구겨 넣었다

 

거리에 찍힌 무수한 발자국, 그 무게와

모양이 각기 다르다는 걸 딸아이는

처음으로 교과서 밖에서 배우고 있었다

 

 

*시집/ 공중부양사/ 애지

 

 

 

 

 

 

수정탕에서 - 김요아킴

-금곡동 아파트

 

 

세상이 모두 왼손이다

 

한쪽 소맷자락이 유독, 선풍기 바람에

펄럭이는 한 사내

생을 게워낸 묵은 노동들로

뿌연 한증막에 가려진,

 

등줄기에 흐르는 물기를 닦아야 할

타올이 걸쳐진 옷걸이가 왼손이다

머리를 말리다 떨어진 빗을 서둘러

주워준 내 팔이 왼손이다

스킨을 바르기 위해

끼워둔 그의 무릎이 왼손이다

불안한 단추와 혁대를

기대어 당겨야 할 벽이 왼손이다

이를 하나하나 지켜보던 옆 사람들의

얼굴이 왼손이다

 

적어도 수정탕에서는

모든 세상이 그의 왼손이다

 

그 왼손이 세상의 문을 열고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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