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옆 김밥집 - 김요아킴
-금곡동 아파트
독서실 의자에 붙잡혀 있다가
수제비로 허기를 달래는 딸아이에
아비는 김밥 한 줄을 더 보태었다
서로의 어깨가 연골처럼 부딪히는 자리,
무작정 밀치고 들어와 고집 묻어나는
쇳소리로 주문을 거는 노인들
불조심 마크 선연한 모자 속
땀내가 국물처럼 피어오르자, 배배 꼬인
면발이 태극기마냥 젓가락에 나부꼈다
서로 다름을 모두 붉은 낙인으로 찍어대던,
분노는 배고픈 북쪽의 일용할 양식이 될
쌀 한 톨에까지로 이어졌다
김 속의 밥알을 곱씹다가, 딸아이는
그 빨간 깍뚜기를 집다 말았고, 아비는
서둘러 잔돈을 지갑에 구겨 넣었다
거리에 찍힌 무수한 발자국, 그 무게와
모양이 각기 다르다는 걸 딸아이는
처음으로 교과서 밖에서 배우고 있었다
*시집/ 공중부양사/ 애지
수정탕에서 - 김요아킴
-금곡동 아파트
세상이 모두 왼손이다
한쪽 소맷자락이 유독, 선풍기 바람에
펄럭이는 한 사내
생을 게워낸 묵은 노동들로
뿌연 한증막에 가려진,
등줄기에 흐르는 물기를 닦아야 할
타올이 걸쳐진 옷걸이가 왼손이다
머리를 말리다 떨어진 빗을 서둘러
주워준 내 팔이 왼손이다
스킨을 바르기 위해
끼워둔 그의 무릎이 왼손이다
불안한 단추와 혁대를
기대어 당겨야 할 벽이 왼손이다
이를 하나하나 지켜보던 옆 사람들의
얼굴이 왼손이다
적어도 수정탕에서는
모든 세상이 그의 왼손이다
그 왼손이 세상의 문을 열고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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