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부에노스아이레스, 동경, 서울역 - 강민영

마루안 2020. 9. 3. 19:11

 

 

부에노스아이레스, 동경, 서울역 - 강민영


막차 뒤에 다른 세계가 열린다
뭉글뭉글 밀려오는 포복한 기운들
냄새가 바짝 따라간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동경
서울역

바닥을 칠 때에야 찾게 되는 바닥
마지막 하나를 남긴 노숙은
의외로 가볍다
혼자 들어앉은 굴속,
강 건너 네온사인은 강 건너의 일

호루라기 신호가 규칙이다
침 뱉은 빵을 던져줘도
분노하지 않는 흐린 눈으로
느릿하게 돌아누우면 성공이다
뭉개고 짓밟아도 매일 발기하는 노숙

부에노스아이레스
동경
서울역
그 도심의 끝에는
이른 아침 갠지스강처럼
어제가 부산물로 떠다닌다

침묵하는 도시
수십 개의 세계
수천 개의 섬들


*시집/ 아무도 달이 계속 자란다고 생각 안 하지/ 삶창

 

 

 

 

 

 

돌사막 - 강민영


내가 지나온 사막에는
한 떼의 낙타 뼈조차 보이지 않는다
별똥별에 발끝이 잠깐 밝아진다
빛줄기는 한 떼의 돌무더기를 휘감는다

모래가 밀려오고 덮치는 동안
나는 등을 밟는 바람의 발을 생각한다
순장이라는 말에는
짐승의 먹이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짐승의 혀로 환히 열린다는 하늘길이
내 앞에 펼쳐진다

먼 곳에서 신기루로 지워지는 낙타 울음도
내 폐부 어딘가에 잠시 고였다 흘러간다
지평선에 속눈썹 같은 먼 산이 떠오르고
나는 스카프를 풀어 다시 막막함을 묶는다

사막을 끌고 다니는 돌무더기는
달이 뜨면 물 나무로, 는개 올 땐 마른 물고기로 산다
돌사막이 계속 묽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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