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날씨는 먹구름을 발표하고 - 김대호

마루안 2020. 8. 11. 19:19

 

 

날씨는 먹구름을 발표하고 - 김대호


한사람에 대한 치유가 살아 있는 증거가 될 때
그날, 난 아무것도 안 하고 걷기만 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보았다
병원에서 나와 편의점까지 가는 동안
거리에서
무수한 행인들의 눈빛이 이국의 문장이 되어
내 외투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손바닥 실금이 젖었다
살아질 거예요 걱정 마세요
의사의 말이 평범하게 남아 있다
이 이국의 거리
의사의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의사에게 질문한 것도 모국어가 아니었으니
두려움의 파장만 있다
먹구름을 발표하는 날씨이다
편의점을 나오면서
병원 복도에 대기 중인 환자들의 눈빛을 닮은
상품들이 진열대에 다소곳이 진열돼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 나는 이국에서 온 통증을
모국어가 아닌 중얼거림으로 몸에 담았다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걷는사람

 

 

 

 

 

 

시간 외 - 김대호


시간 외 수당은 지급되지 않는다
구름이나 바람은 시간 외에 있어서 따로 돌봐야 하지만
생각의 노동에 수당은 없는 것

시간 안에서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입술들

시간은 누워 있어도 생겨나고 밀폐해도 똑같은 밀도로 생겨난다
울음 근처에서 시간은 잠시 뜸을 들이는 듯하지만
울음은 잠시뿐

구름 아래
인생의 절반 이상을 농담으로 살았던 자가 지나간다
그자는 자신이 어디서 왔고 몇 개인지도 모르는 자이다

오래오래 사는 것이 자신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라는 생각을 매일 한다
새벽에 뒷산에서 내려온 노루의 처절한 울음을 들었다
그 울음을 듣는 귀는 시간 외 귀였고
두 귀는 노루가 있음직한 곳을 잠시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들어와 잠을 잤다



 

*시인의 말

나는 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문장을 수정했다
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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