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멈춰선 돌멩이 - 이학성

마루안 2020. 8. 10. 21:49

 

 

멈춰선 돌멩이 - 이학성


언제부터 그가 침묵하고 있었을까.
왜 여기 그는 멈춰서 있는 걸까.
나도 한때는 세상 어디로든 갈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지.
멀리, 더 멀리 가보려고 했으나
애타게 기다리는 이가 있어
과거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곤 했지.
그도 막다른 어디선가 돌아온 건가.
언제든 다시 달아나려고 궁리하는 중인가.
아니, 아니 이제야 기다리는 이의 심중을 읽었거나
힘없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한 건가.
어쩌면 그는 나보다도 멀리서 왔을 거야
기어이 돌아가려면,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야 해 기다리는 걸까.


*시집/ 늙은 낙타의 일과/ 시와반시

 

 

 

 



도제 - 이학성


스승이라곤 내게  없었다.
학교 문턱을 요행히도 넘어서거나
교범이라도 한 줄 훔쳐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헐렁한 그릇을 누가 품어주겠는가.
설령 기회가 왔더라도 충실한 기르침대로 따르려고 했겠는가.
반항과 거역을 일삼았을 徒第.
어딜 가든 비아냥거리며 뒤따르던 손가락질아,
혹 네가 깨우침을 준 스승 아니었을까.
그랬던 것이라면 조금도 서운치 않다.
이제야말로 멀리 더 멀리로 내쫓아다오.
황량한 비바람 언덕이어도 좋다.
고원의 늑대굴이더라도 사양하진 않으리.
어디서 무릎 꺾고 멈추려는가.
그때까지 손가락질을 그치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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