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침침하다 - 정덕재

마루안 2020. 8. 10. 22:06

 

 

침침하다 - 정덕재

 

 

침침하다

가끔은 겹쳐 보이고

흐릿흐릿

숫자가 6인지 5인지

선명하지 않아

돋보기를 찾는다

미간을 좁히며

바라보는 게시판 벽보에서

디딤돌 같은 미음 받침이

힘겨워 보이거나

탈락한 받침들이 아우성거리면

문자를 깨우친

반세기의 세월이 소란스럽다

어느새 까마득한 저편이 되었는데

허겁지겁 인공눈물을 찾거나

걸쳐 쓴 돋보기를 올린다

안과에서 인공눈물 한 박스 들고 나오면

무심코 식탁 다리에 발목을 부딪친 눈물은

견딜 수 있는 위안이지만

건조한 것은 눈이 아니라

메말라 갈라진

갈증의 응시다

 

 

*시집/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걷는사람

 

 

 

 

 

 

1235를 아시나요 - 정덕재

 

 

내 비밀을 알려줘

복잡한 내 비밀을 알려줘

어제 바꾼 비밀변호가 생각나지 않아

내가 나를 몰라

1234567로 하면 쉽게 알까

1234568로 바꾸기도 했지

언젠가부터

영어를 섞어 쓰고

느낌표 같은 구호를 함께 쓰라는 요구를

복종하며 복잡한 비밀을 만들었지

늘 쓰던 인터넷 메일 번호도 생각나지 않아

거기까지는 괜찮아

견딜 만하지

참을 수 없는 것은

술집 주점의 상가 화장실 앞이지

#1234#

#1234*

*1234#

*1234*

술 취한 화장실 앞에서

숨을 고르며 집중력을 발휘하지만

다시 돌아와 주인에게 묻곤 하지

찔끔 새어 나오는

전립선의 50대는

죄짓고는 살아도

비밀번호 모르고는 살 수 없는 법

당신의 비밀을 알려줘

너무도 어려운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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