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철 - 이소연

마루안 2020. 7. 20. 22:18

 

 

철 - 이소연


나는 여섯 살에
철조망에 걸려 찢어진 뺨을 가졌다

철을 왜 바다 가까이 두었을까?

눈을 감고 바다를 들으려고
바람을 따라갔다
피가 나는 뺨을 받아왔다

아무도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잠을 잤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지린내가 심장까지 따라왔다

철을 왜 바다 가까이 둘까?
그 둔중한 말을 왜

그땐 왜 눈을 감지 않았을까?
무얼 가지려고

갈라지는 물
다시 아무는 물
꿰매지 못한 뺨
철을 바다 가까이 두는 게 더는 이상하지 않았다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걷는사람


 

 



철 5 - 이소연


터미널 뒤에서는 몸을 팔 수도 있다
곧 떠나는 사람들이 깜박하고 놓고 갈 수 있는 옛날
슬픔은 왜 썩지 아니하고 상품이 되었나

철 기둥이 떠받치고 있던 상점 안에서
백인 남자 셋이 맥주를 마실 때
지붕 위로 내리던 것은 하늘이 아니라 전선들이었다
벌어진 허공에 드러난 전선들
몸 밖의 핏줄처럼 아파 보인다
안에 있던 것들이 꺼내질 때 우리는 위태롭다고 느낀다
나는 돈이 든 지갑을 가장 깊은 주머니에 찔러 넣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건물 밖에 빨래를 너는 사람들은 오늘의 해를 내일로 넘겨주는 사람들

해변의 골목, 무너짐과 단단함을 움켜쥐고 녹이 슨다
사람을 살리겠다던 사람들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고
깃발만이 물 밖의 물고기처럼 팔딱인다

소녀가 혼자 낳은 아이들은 함대만 한 유람선 밑에서
장딴지의 핏줄이 파래지도록 물장구를 친다
마을과 이어진 골짜기에서 쏟아져 나온 엄청난 비늘들
모자를 쓴 마을 전체가 주일마다 수군거린다
"과거는 끝났다 미래밖에 없다"

백사장엔 최후를 팔아서 삶을 연명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떠난 남자의 아이들이 몰려다닌다

 

 

 

 

*시인의 말

혼자이며서 둘이고
둘이면서 혼자를 잊지 않는 것

네가 나를 빠져나가도
나는 선명하고 온전하다.

그러나 증표처럼 내가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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