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수의 - 백무산

마루안 2020. 7. 17. 19:17

 

 

수의 - 백무산

 

 

다락에서 먼지투성이 가방 하나 찾아내었네

그러나 어디서 얽혔는지 별 기억이 없네

먼지 털어낸 가방 속에 잘 개켜둔 옷 한벌

마치 무덤 속 관 뚜껑을 열어본 듯

 

팔꿈치는 꽤 낡아 있고 유행이 많이 지났지만

내 옷이란 기억밖에 기억이 없다

이리 저리 뒤적여보지만

언제였는지 어떻게 입은 옷이었는지

 

어느 한때의 몸을 한껏 꾸미고

그 시절을 걸었을 것인데

두근거리던 시간 위를 걷고

실외의 추운 밤길을 헤매기도 했을 것인데

땀과 눈물을 적시고 어떤 절정에 몸을 떨며

소중한 사람을 안아보기도 했을 것인데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기억이 풀려나오지만

분명한 한때를 삶의 절정이던 한 시절을

나의 모든 것이었을 그 시간에

누추함을 감추고 한껏 품위를 입혔을 것인데

 

가방 속 지워진 그 시절을

몸은 사라지고 수의만 남은 관 속을 들여다보듯

떠나보냈구나 이 옷을 입혀서 그 시절의 나를

모든 옷이 수의였구나

나를 떠나보내면서 입혔던 수의였구나

 

 

*시집/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창비

 

 

 

 

 

 

잘 가셨는지요 - 백무산

 

 

죽은 자가 따라다니는 시절이 되었는지

또 날아온 부고는

믿기지 않았다 얼마전 저녁을 함께 했던 사람이다

전화기를 접지 않고

그의 온기를 느껴보려고 그가 보낸 메시지를 뒤져보니

아직 체온이 남아 있었다

"잘 가셨는지요.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죄송했어요."

 

떠난 사람이 나였다는 듯이

그는 그곳에 있고 내가 멀리 가버렸다는 듯이

내 뒷모습에서 떠나는 자의 쓸쓸함을 읽었다는 듯이

 

살아 있다는 것이 되레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는 듯이

수많은 죽음을 맞이하는 일과

수많은 자신의 죽음을 겪는 일로

 

눈물은 죽은 자가 흘린다

죽은 자의 혼은 언제나 산 사람을 붙들고 운다

두고 가는 발걸음 떨어지지 않아

산사람이 가엾고 불쌍해서 펑펑 운다

죽은 자에게 애도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