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피내림 - 김윤배

마루안 2020. 2. 23. 18:53

 

 

피내림 - 김윤배
-유랑광대 24


그 숨막히는
접신 거부의 손사래 꺾이고
내 어머니 마침내
이름없는 만신으로 방울부채 펴 드실 제
어머니 피울음 방울방울 피울음
들었나이다
헛보임 헛들림 떨치시고
시퍼런 부엌칼 휘저어
동서남북 가르시던 내림굿 마당
캉캉 우는 쇳소리 접신의 황홀함
꼭두서니로 번지는 어머니 얼굴
보았나이다
만신이 되어 무당이 되어
당굿 병굿 자리걷이 넋건지기
살풀이춤 시나윗가락 넘나들며
신당 뒤란 어둠 열고
징소리 북소리
젖꼭지로 물려주신 어머니
걸맆패 상쇠소리만 들어도
피가 솟고
한풀이 춤판 무명배 찢기어도
어깨 들리고
이 땅 수없이 펄럭이는 만장
펄럭여 피가 솟고 어깨 들려
두근거림의 큰강물이 되는 나는
어머니 피내림이 아닐지요


*시집, 떠돌이의 노래, 창작과비평

 

 




남도 삼백리 - 김윤배
-유랑광대 21


겨울 걸립 떠나는
안성 청룡사 남사당패
봉두난발에 감춰진
서늘한 눈빛

설한풍에 흩어지는
청솔 연기 따라
해진 소매끝이 짚는
남도 삼백리
먼 하늘

역마살 떠돌이의
버려진 혼백에게
버려진 땅에
천근 가슴 씻어내릴
겨울 안개

그 땅에
걸립신 강림하사
저 춥고 가난한
남도 삼백리
적시는 춤사위
흠향하시리
흠향하시리


 

 

# 김윤배 시인은 1944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한국방송통신대, 고려대 교육대학원 및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겨울 숲에서>, <떠돌이의 노래>, <강 깊은 당신 편지>, <굴욕은 아름답다>, <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 <슬프도록 비천하고 슬프도록 당당한>, <부론에서 길을 잃다>,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바람의 등을 보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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