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잡초 앞에서 - 윤일현

마루안 2020. 2. 22. 19:03

 

 

잡초 앞에서 - 윤일현

 

 

같은 부류끼리 모여 있다고

서로 아끼며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한 모금 물을 위해 동료의 발목을 잡고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뿌리들을 보아라

 

찹초면서 잡초 아니라고 우기는 자들을 멀리하라

보이지 않는 얼룩과 폐부 깊숙한 곳의 악취가

언젠가는 네 자리를 오염시킬 것이다

 

잡초 아니면서 잡초인 체하는 자들도 경계하라

순진한 것들의 줄기와 잎에 올라타고

교묘히 제 이익만 취할 것이다

 

모양과 빛깔이 좀 다르다고

함부로 몰아붙이며 괴롭히지 마라

뽑혀 던져지는 순간까지의 초조함,

그 불안감이 너를 쏙 빼닯지 않았는가

 

세상 모든 풀과 꽃은 잡초면서 잡초 아니다

누가 노을에 젖어 강바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누가 비바람에 힘없이 쓰러지는 것들을 위해

기꺼이 낯가리지 않고 작은 어깨 내주는가

 

 

*시집/ 낙동강이고 세월이고 나입니다/ 시와반시

 

 

 

 

 

 

모난 돌 - 윤일현

 


모난 돌이라 욕하지 마라

둥근 네가
온 세상 굴러다니며
세상 잡것들과 몸 섞으며
온갖 저지레를 다하는 동안

 

모가 나서
어느 쪽으로도 구를 수 없는 나는
해와 달, 저 철새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여기 이 강 언덕에 붙박이로 살았노라

때론 모난 돌이
떠돌이들의 이정표임을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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