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스무 살을 위하여 - 이우근

마루안 2020. 2. 18. 22:15



스무 살을 위하여 - 이우근



새벽별은 나의 각성제
솜사탕의 추억을 운동화로 짓밟다
오줌을 누면서 강물을 꿈꾸었던 그때
그런 따스한 연대(連帶)를 그리워했던 나날
무모한 풀잎이면서도 강철을 모방했던 순간
느슨한 시대의 릴레이에 저항하려 분기탱천
그러나 현실이 불량품이었다는 사실에 조금 긴장했다
라면 국물에 밥 말아먹고 느낀 쓸쓸한 평화
그리움을 사랑으로 확대재생산할 내적 에너지의 필요성 절감
한대수 이연실은 희망과 절망의 대표주자로 교체기용하고
절차탁마 대기만성의 화두 김밥으로 말았다
사는 건 종신서원의 가을 오후
다비식 끝난 뒤의 하산 같은 것
그렇게 변방에서 끄적거림으로 점철된 철없는 습작(習作)의 나날
기념으로 볼프강 볼헤르트의 초상
이마에 걸어두고
미리 쓴 묘비명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그렇고 그런 사소한 것들
가방에 구겨 넣고
나는 가네
저 고소한 구린내 나는 사람들의 마을로.



*시집,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도서출판 선








남산여인숙 - 이우근
 -박인태에게



민들레와 질경이가 우리 온 땅에 있듯
서울에도 경주에도 남산은 있습니다
남쪽은 항상 따뜻하고 북쪽은 늘 추울까요?
추운 곳일수록 봄과 여름이 더 계절답습니다
남산여인숙은 추운 공간입니다
그래서 시련은 단련이 아니라 참음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통합의 전제조건입니다
양말을 벗고,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갓끈은 고사하고
남루한 의상도 지금 없습니다
길은 무한증식의 유전자를 깔아놓고 있었습니다
다만 걸을 뿐
남대문시장의 남산여인숙은
그 값싼 가치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휴식을 제공하며
간혹 교성(嬌聲)이 불심검문을 하듯 끼어들어도
널빤지 하나의 얄팍한 구분이
우리의 시대였음을 지적하며
먼 곳을 향해 길을 떠날 채비에 여념이 없는
서울역 근처
주소는 없어도
본적(本籍)마저 말아먹지는 않았습니다.






# 이 시를 읽으며 나의 스무 살을 떠올려 본다.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비몽사몽간에 흘려 버린 날이 아쉽기만 하다. 뜨겁기는 했던 것일까. 스무 살을 함께 지나온 친구들도 빛바랜 사진 속에 박혀 추억을 되새길 뿐이다. 어쨌든 무난히 살아낸 인생,, 젊어는 봤으니 이제 슬슬 늙을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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