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거위의 죽음 - 박서영

마루안 2020. 2. 16. 18:48



거위의 죽음 - 박서영



호수가 얼마나 빨리 얼어버렸는지

거위는 한쪽 발이 얼음 속에 빠진 채

죽어 발견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거위는 눈먼 거위였을 테고

화살표처럼 긴 목은 심장을 가리키고 있었을 테지

황색 부리를 추억 속에 묻고 있다가

참변을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추위가 몰려올 줄을 몰랐겠다

얼마나 당황했을까? 이별의 슬픔을 덮어줄

옷을 짜는 건 연금술사의 몫

함께 놀던 시간 속을 미처 빠져나오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한파가 몰여와 물이 얼어버렸다

거위는 헤엄치며 자신의 세계가

점점 차갑게 얼어버리는 것을 느꼈을 거야

흐르는 눈물에서는 석유 냄새가 났겠지

불을 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가느다란 마음의 심지들을 끌어 모아서

얼음 속에 갇힌 얼굴들을 닦아주고 싶었을 거야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그와 그녀와 나와

당신의 심장에 불을 켜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죽은 거위의 부리가 여전히

성냥처럼 붉고 단단하지

이곳에 온 적이 없다는 말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다



*시집,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걷는사람








검고 파란 시간의 죽음 곁에서 - 박서영 



날아다니는 새들의 숫자를 기록하는 계산원이 되어

나뒹구는 슬픔의 깃털을 바라보았어


우리의 시간, 제멋대로 다가왔다가 떠나기를

반복하는 우리의 시간들


이별할 때 주고받는 말들은

죽은 새들을 밀거래하는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그러니까 이별은 아름다운 밀거래

발각되는 순간 제멋대로 날개를 펼쳐 날아다닌다

당신은 그곳에 없었다고 알리바이를 대고

나는 씁니다, 흩날리는 흩날리는 눈보라처럼

우리가 때려죽인 새들이 해변에 쌓여가고 있다

당신과는 현충일에 이 해변을 함께 걸었었지

삐죽거리는 물결들, 꼭 뭔가를 소문내려고 하는 찢어진

입술들 같구나, 검고 파란 시간의 죽음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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