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아파서 살았다 - 오창희

마루안 2020. 2. 17. 19:02

 

 

 

싱그런 여름 햇살처럼 빛이 나던 21 살 여대생에게 류머티즘이라는 병마가 찾아왔다. 이 책 <아파서 살았다>는 1958년 생인 저자가 40년 간 이 병과 함께한 이야기다. 절망 속에서도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는 희망 속에 살아온 세월이 소설처럼 펼쳐진다.

누구의 인생인들 평탄하기만 했겠는가마는 이 분의 인생은 유독 파란만장하다. 등단한 작가가 아님에도 글을 아주 흡인력 있게 잘 쓴다. 아마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인가 보다. 갑자기 찾아온 병마와 싸움면서 그녀는 다니던 대학을 졸업했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어느 정도 경제력이 받쳐준 집이었기에 이 정도의 치료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 가족처럼 만약 반지하 방에서 어렵게 사는 집안이었다면 그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내 경우였으면 속절 없이 죽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보다 그의 부모님과 가족들의 희생이 눈물겹다. 5남매의 막내딸인 저자는 교직에 있는 아버지 아래서 어여쁨을 받으며 자랐고 병마가 찾아오자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녀의 치료를 도왔다.

류머티즘이라는 병은 전국 병원을 다녀도 각자 의사의 처방이 다르고 여기 가면 그 말이 옳고 저기 가면 그 처방이 옳았다. 의사가 못 고치자 다른 방법을 찾는다. 모든 환자는 똑같다. 그녀의 어머니는 전국을 돌며 약이란 약을 다 찾아다닌다.

 

<모두 누군가가 먹고 완치되었거나 효험을 보았다고 소문이 난 약들이었다. 어머니가 직접 달인 것만도 100재가 넘는다. 어머니는 지극정성으로 달이셨고 나도 간절한 마음으로 먹었다. 그런데 눈곱만큼의 차도도 없었다. 차도는커녕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양약과 한약이라는 허가된 명약의 순례로 효과를 보지 못하자 허가받지 못한 명약 순례로 방향을 틀었다. 늙은 호박에 지네를 넣어 삶아 먹기도 하고, 개뼈다귀 삶을 물을 상복하다가 수년간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토끼인 줄 알고 먹은 고양이가 몇 마리인지 모른다.

 

말발톱 볶은 가루를 막걸리에 타서 마시고 종일 취해 있어야 했고, 뱀술을 마시고 심장이 터질 듯한 경험을 하고, 흰수탉에 한약재를 넣은 약은 마당에 가마솥을 걸어 놓고 여름 내내 달여 먹었다. 토끼 생간을 먹을 때는 못 먹겠다고 버티다 어머니의 호통에 울면서 먹기도 했다.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만만치 않게 먹었다. 바위에 낀 오래된 이끼도 먹고 개두릅나무 삶은 물에 목욕도 하고 그 물에 식혜도 해 먹고 열을 빼려고 감자를 갈아 밀가루로 반죽한 것을 전신 관절에 붙였다가 털까지 뜯기는 고문도 당했다. 먹으면 약이 된다는 것은 뭐든 먹었다>.

 

먹는 약으로 효과가 없자 단식으로 효험을 봤다고 누군가 소개를 하자 불원천리 찾아간다. 먹어서 안 되면 굶어야 된다는 거다. 단식과 보식을 번갈아 가며 8 개월을 했는데 체중이 39 kg까지 내려간 덕에 근육도 함께 빠져 손가락에 변형이 왔다.

 

아버지 몰래 어머니와 함께 동쪽을 향해 "남묘호랭교, 남묘호랭교"를 암송하다 아버지 눈에 띄어 호되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집안에 잡신이 있어서 그런다는 점쟁이의 말에 무당을 모셔와 식칼을 던지는 굿을 하기도 했다. 나무토막 같은 부적을 검은 헝겊에 싸서 몸에 지니고 있기도 했고 피부가 허물도록 침과 뜸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그녀가 받은 치료법과 먹은 약은 셀 수 없이 많다. 심지어 자기 소변을 받아 마시는 요료법까지 해본다. 차도 없는 치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살고자 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딸의 대소변을 받아 내던 어머니가 어느 날 강물에 함께 빠져서 죽자고 할 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죽고 싶으면 엄마나 가서 죽어라. 나는 이래도 사는 게 좋다." 이 책은 저자가 투병 중에 쓴 일기를 얼개로 전개된다. 그녀는 손가락까지 휘어지고 온갖 통증을 참아가면서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온갖 노력에도 10 년을 서지 못하고 살다 서른 한 살 때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조금씩 걸어 다닐 수 있게 된다.

 

그녀는 공부를 멈추지 않았고 독서지도사로 나선다. 평생 가족에게 짐만 될 거라 생각했는데 돈을 벌게 된 것이다. 감이당이라는 곳을 알게 되어 더 깊은 공부도 하고 마침내 독립해서 혼자 살게 된다. 아파서 살았다는 책 제목의 절정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이렇게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독서 후기 가능한 짧게 쓰려는데 이 책은 조금 길어졌다. 나는 왜 이런 이야기에 열광하는 걸까. 사는 것이 참 좋다. 건강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