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 이은규 시집

마루안 2020. 1. 16. 21:40

 

 

 

이은규 시인이 드디어 두 번째 시집을 냈다. 내가 '드디어'라고 한 이유는 이 시인의 다음 시집을 눈꼽아 기다렸기 때문이다. 첫 시집을 2012년에 냈으니 오랜 만에 나온 것은 분명하다. <다정한 호칭>이라는 시집 제목으로 아주 딱 어울리는 시집은 오랜 시간 내 옆에 있던 책이다.

제목에 꽂혀서 샀던 시집이었으나 읽으면서 그의 시에 제대로 중독이 되었다. 처음엔 남성 시인으로 알았다. 첫 시집, 첫 시를 읽으면서 이 사람 참 시를 잘 쓰는 시인이구나 했다. 애초에 평론가들이나 문예지에서 언급하는 시집평을 믿지 않으니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지금도 나는 신문에 나오는 도서평이나 명사들이 권하는 읽을 만한 책 등을 믿지 않는다. 지금껏 그들이 권한 책 중에서 크게 공감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서평이나 새책 소식은 그저 참고만 할 뿐, 나는 오직 내 의지로 책을 고르고 선택한다.

 

이은규 시인도 순전히 내가 발견한 시인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첫 시집 이후, 삼사 년쯤 지나면 다음 시집이 나오겠지 했다. 시집 자판기처럼 매년 시집을 내는 사람도 있는데 두 번째 시집이 나오기까지 비교적 길게 뜸을 들인 편이다.

시 하나 하나가 모두 오랜 숙성을 거쳤음을 느낀다. 음식도 그렇거니와 시도 뜸을 오래 들인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떤 시인은 참 좋았던 초창기 시가 세월이 갈수록 점점 힘이 빠지더니 지나친 뜸으로 맥없이 쭈글쭈글해진 시도 있다.

 

이은규의 이번 시집에는 일상을 시와 살지 않으면 나오지 않을 시가 대부분이다. 고른 작품성으로 어느 시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을 정도로 좋은 시가 많다. 시중에 쏟아져 나오는 시집 중에 이런 시집은 만나기 참 드물다.

 

'낭중지추'라는 말을 좋아한다. 언론사 문학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이 띄워주지 않아도 좋은 시는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은규 시가 그렇다. 좋은 독자는 숨어 있는 시인을 발견하는 눈을 가졌다. 많이보다 오래 팔리는 시집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진정성이 작품에 온전히 담길 때 독자는 그 행간에 숨은 뜻까지 찾아 낸다. 설사 못 찾더라도 느낌표쯤 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오래 읽을수록 단물이 나오는 시는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다. 다음 시집은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