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북향의 화단 - 성봉수

마루안 2020. 1. 30. 19:55

 

 

북향의 화단 - 성봉수


북향의 화단에는
봄이 오기 전에는 눈이 녹지 않으리라

겨울을 잡고 맞은 이별은
이별로 얼어 늘 떠나가고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얼어
가슴 속을 아프게 긁는
시린 바람의 면도날이 되었다

귓불이 아리도록 서러운 어느 겨울
나는 북쪽으로 난 화단 옆에 발가벗고 앉아
겨울을 잡고 떠나지 못하였는데

그렇게 지키고 선
모든 사랑과  모든 증오와 모든 만남과 모든 헤어짐과
나서지 않는 겨울과 맞아 설 수 없는 봄도
한몸이면서도 서로 어우를 수 없는
막대자석의 이 끝과 저 끝이었으리라

내 마흔 몇 해,
북쪽으로 걷던 그해 겨울
북향의 화단 옆에 발가벗고 앉아
겨울을 잡고 떠나지 못하였는데


*시집, 바람 그리기, 책과나무

 

 

 

 

 

 

탁발 - 성봉수


부황 든 오늘에
지난 울력은 부질없느니
동안거의 수행이란 거짓이라 했다

무엇을 담아 먼 길을 나서나
바랑을 앞에 놓고
눈물이 났다

식은 감자 세 덩이를
챙겨 넣으며
또 울었다

살갑던 좁은 뜰에 눈이 쌓인 날
빈 망태 짊어지고 헤진 앞섶 여며 잡고
길을 나선다

한 몸뚱이 누울 곳 없는 어제의 문을 닫고
터벅터벅 구걸의 머언 길을 냐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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